‘니들도 공범.’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 취재에 나선 KBS 중계차량에 한 시민이 쓴 글귀다. 성역 없는 권력 감시와 비판은커녕 정권 입맛 맞추기 보도로 지탄을 받아온 공영방송의 현주소라는 목소리가 높다.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국내 언론 지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언론 내부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순실 사태, 언론보도를 논하다’ 긴급간담회에서 언론 현업 종사자들과 학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직간접적으로 방치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며 “이번 사태를 헌법질서 파괴 사건으로 명명해 권력형 비리를 제대로 척결하는 데 일조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특히 국민의 신뢰도를 존재 이유로 삼는 공영방송의 현주소에 대한 우려가 컸다.
정수영 KBS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지난 9월 최순실이란 이름이 언론 보도에 첫 등장 이후에도 KBS 보도국 간부들 사이에서 이를 묵살한 상황을 설명하며 “현재까지 KBS 보도는 묵살, 뒷북, 물타기란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는 “촛불집회에서 KBS를 향해 시민들이 소리친 ‘니들도 공범’이란 비판이 뼈아픈 상황”이라고도 말했다.
이호찬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 역시 “보도국 기자들이 최순실 사태를 파헤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데 대한 자성과 간부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수뇌부는 침묵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로 추락한 시청률뿐 아니라 MBC에 대한 국민들의 무너진 신뢰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탄했다.
학문적 관점에서 언론을 들여다보는 전문가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내비쳤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이번 사태를 둘러싼 언론의 취재경쟁을 두고 “언론이 사실을 하나하나 발굴해가면서 최순실 게이트라는 거대 퍼즐을 맞춰나갔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사의 신화로 남을 수 있는 사례가 될 것”이라며 “기자들의 야수본능과 기자정신이 회복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주류 언론과 학계의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이 그 동안 얼마나 기득권에 가까웠고 권력 비리에 눈 뜨지 못했는지 반성해야 한다”며 “물론 언론 현황에 문제의식과 활발한 토론이 없었던 언론학계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 사태를 최순실 국정농단이 아닌 헌법질서 파괴 사건으로 규정해 더 다양한 이슈를 파헤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채영길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최순실 게이트에 가려진 주요 국정 문제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촉구하며 “현 사태 이후 새로운 공론장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미르ㆍK스포츠재단과 차은택 의혹 등 최순실 게이트 보도의 물꼬를 튼 TV조선의 이진동 사회부장과 TV조선의 보도를 바탕으로 비선 실체를 드러낸 한겨레신문 김의겸 선임기자,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김명환 책임프로듀서 등이 참석해 그간 보도과정을 전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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