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선 인물 사진 내리고
정치적 고향 서문시장도 외면
SNS 프로필도 ‘박근혜 흔적’ 없애기
박근혜 마케팅 앞장 정치인 등 가세
보수의 성지로 부족해 ‘수꼴(수구꼴통)지역’이란 오명을 들어온 TK(대구경북). TK가 뿔났다. 식당, 치킨집, 옷 가게 등 상가는 물론 박근혜 마케팅에 앞장서온 지역 정치인들도 박근혜 지우기에 나섰다. 박 대통령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표를 달라고 하던 정치인들조차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사진과 경력을 지우고 있다. 가게 주인들은 배신감으로, 손님들의 항의 때문에 박 대통령 방문사진 등을 내리고 있다. 한때 ‘가문의 영광’이었던 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멍에로 전락했다.
정치적 고향 서문시장, 사라지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대구 중구 서문시장. 서문시장은 선거 때는 물론 박 대통령이 고비 때 마다 찾던 한강이남 최대의 전통시장이다. 두 집 건너 한 집 정도로 가게마다 박근혜 대통령 방문 사진이 걸려 있던 곳이다. 그런 서문시장에서 1곳만 남기고 박 대통령 사진이 싹 사라졌다.
22일 오후 찾은 서문시장엔 박 대통령 사진을 찾아볼 수 없었다. 4지구에서 이불가게를 하는 A씨는 “시장 내에 대통령 사진이 남은 집은 딱 한 곳”이라며 “대구ㆍ경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상상이나 했겠냐”며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라고 말했다. A씨 가게 안 유리문에는 ‘박근혜 퇴진’이라고 적힌 빨간색 피켓이 붙어 있다.
서문시장 대표 먹거리인 누른 국수로 유명한 한 식당은 아예 박대통령 사진을 흰 종이로 가렸다. 이 식당 한 쪽 벽면엔 방송출연 장면과 유명인 기념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원래는 이 가운데 걸어둔 박대통령 사진이 SNS에서 주목 받기도 했다. 식당주인 강병태(68)씨는 “불편해하는 손님들이 많아 지난주부터 사진을 가렸다”며 “이 작은 사진을 놓고 말이 많아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사진이 남은 곳은 지난해 9월 박 대통령이 구두를 산 후 해당 상품이 품절된 신발가게다. 이 가게 간판 아래에는 박대통령이 구두를 사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아직도 커다랗게 붙어있다. 사장 김연희(60ㆍ여)씨는 “젊은 사람들 중에는 고지식하다 항의하는 사람도 있고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도 ‘시국이 이런데 좀 떼내지’라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며 “하지만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한 나라의 ‘대통령’이 다녀간 신발 가게임을 표시해둔 것”이라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치킨 체인점 30곳, 박 대통령 사진 일제히 철거
역대 대통령 사진을 순서대로 전시한 인테리어가 컨셉인 한 치킨프랜차이즈. 대구 수성구 욱수동 본점을 비롯, 30여 가맹점 대부분이 박 대통령 사진만 내렸다. 손님들의 거센 항의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욱수동 본점 주인 이창곤(45)씨는 “중년을 넘은 손님들이 유독 항의가 많았고, ‘밥 먹는데 쳐다보기도 싫다’고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 사진을 없앴다”며 “대부분의 가맹점들도 자발적으로 철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순서대로 10명의 대통령 사진 중 이명박 전 대통령 옆자리의 박 대통령 자리만 휑하니 비어 있었다.
상인들이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경기침체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대통령 맛집으로 소문난 대구 달성군 논공읍 한 식당 대표는 2주 전 손님의 항의로 박대통령 방문 사진을 떼 냈다.“(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일이 터지고부터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가 더 나빠졌다. 손님들이 싫어하는데 걸어놓을 강심장이 몇이나 되나”고 토로했다.
포항시, 시청로비 사진 ‘철거’ 민원에 진땀
경북 포항시도 시청사 로비에 걸어둔 박근혜 대통령 사진에 대해 ‘철거하라’는 민원인들의 요구가 잇따라 고심하고 있다. 포항시청 2층 로비에는 ‘일자리가 있어 행복한 청년 든든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대형사진이 걸려 있다. 가로 약 3m, 세로 약 2.5m에, 2013년 12월에 열린 청년위원회 2차 회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2014년부터 걸어두고 있다. 포항시 관계자는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전혀 지키지 않고 최순실 딸의 명문대 부정입학 사건 등으로 도리어 청년들에게 허탈감만 안겨주었다. 나라를 망친 대통령 사진을 당장 떼라”는 항의가 있어 처리방향을 두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친박’ 지방의원들도 박근혜 지우기
대구ㆍ경북지역 지방의원들도 ‘친박’ 지우기에 가세했다. 선거 때는 물론 평소에도 사무실 벽에 박근혜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가보처럼 걸어두거나 명함에도 새기던 ‘친박’ 정치인들이 표변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관련 행사에 참여한 이력을 자랑해 온 한 프리랜서는 최근 SNS경력에서 해당문구를 지웠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배유미기자 yum@hankookilbo.com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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