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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자연 속의 문화, 문화 속의 야만

입력
2016.11.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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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선 나를 채식주의자로 아는 이가 많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을 먹어야 하는 모순된 생명현상을 감당하기 힘든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음식 앞에 앉을 때마다 불편했다. 입 속에서 음식이 달게 느껴질 때면 나 자신에게 서운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문화도 어차피 자연에 핀 꽃이라 생각하면서 그 불편함을 버렸다. 다만 다 같은 생명이지만, 고기보다 채소에 쉽게 손이 갈 뿐이다.

나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남의 욕망이 느껴진다. 거꾸로 남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욕망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운 욕망들도 있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으로 최순실 국정농단의 일단이 드러나면서 최경락 경위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청와대는 문건 내용이 아니라 문건 유출로 사건의 프레임을 바꾸기 위해 최경락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고 실제 그렇게 마무리했다. 그의 주검 옆에선 한 판 축제가 벌어졌다.

검찰청사에 들어서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당당한 모습이 부러웠다. 살아남아 당당한 것인지, 죄가 없어 당당한 것인지, 도무지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당당함은 결코 내가 가져본 적이 없는 그런 류의 것이었다. 그가 정윤회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최경락이 자살했다는 보도가 오보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그 당당함의 연원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의 당당함은 좀더 본질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포식자의 당당함. 그러니까 아직도 문화 속에 남아 있는 잔재로서의 자연이랄까. 말하자면 남자의 성욕 같은. 그래서 그에게 살아 있는 존재는 그게 무엇이든 그의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민중은 개돼지’라고 말하던 나향욱 전 교육부 관료의 당당함도 우병우의 당당함과 분명 같은 종류인 것 같다. 그러나 무언가 결이 다르다. 우병우의 당당함에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조선일보에 특종을 안겨준 검찰청 조사실에서 당당함은 나향욱이 국회에 불려 나와 보여준 초췌함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향욱은 자신이 개돼지 위의 상위 포식자라고 확신했던 것 같은데, 사실은 그도 한 순간에 개돼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차마 깨닫지 못했다는 점에서 최 경위만큼의 현실 감각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당당함은 일종의 허세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병우의 저 여유로움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그의 눈에 최순실은 어떤 존재일까. 무단으로 학교를 통째로 빠진 딸을 위해 학교에 쫓아가 짐승처럼 비명을 지르며 패악을 부리던 여인, 그 여인의 힘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그에게 최순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민정수석으로 있었으니 최순실 딸의 이대 부정입학을 알았을 텐데 그에게 최순실은, 공직(公職)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의 눈에 박근혜는 또 어떤 존재로 보였을까. 아이들은 침몰하는 배에 갇혀 죽어가고 있는데 잠에서 깨어난 듯 나타나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을 왜 못 구하냐고 태연하게 묻던 박근혜의 여유로움, 그리고 그 후 일관되게 보여준 여유로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타인의 죽음 옆에서 느끼는 너무도 평온한 기운들.

일본으로 날아가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여유로움에 이르면, 무언가 알 것도 같다. 수많은 이의 피눈물을 밟고 살아온 김기춘의 불로장생의 꿈. 최순실을 고리로 이어진 그들의 여유로움은 자연에도 문화에도 속하지 않는 무엇이다. 하여 그들의 욕망은 결코 문화에 뿌리내려서는 안 되는, 그저 문화와 자연 사이에서 덧난 야만일 뿐이다. 마치 강간처럼 오로지 타인의 고통 속에서만 쾌락을 느끼는 양지의 사이코패스들. 이제 야만의 축제는 끝났다. 촛불아 활활 타올라라. 그리하여 오늘의 정치 경제 검찰 언론 그리고 지난 역사 속의 야만까지 활활 불살라라.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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