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담화 “검찰 조사 받겠다” 공언
피의자 되자 “일절 응하지 않겠다”
국무총리 추천 국회에 맡긴다더니
탄핵 정국에 “퇴진 전제로는 안돼”
미르·K 수사서 거짓 줄줄이 탄로
특검 수용도 빈말로 끝날 가능성
요즘 청와대의 도덕성은 ‘유고(有故) 상태’다. 최순실 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이후, 말 바꾸기와 거짓말이 부쩍 늘었다. 대통령직을 지키고 보자는 욕심 때문에 정권의 정당성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던 시절은 끝났다.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으로 몰린 박 대통령은 끝내 검찰 수사를 거부했다. 이달 4일 2차 대국민담화에서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최대한 협조하겠다. 저 역시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가 돼 있다”고 공언했다가 번복했다. 검찰이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한 20일, 유영하 변호사는 “검찰의 대통령 직접 조사 협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특검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는 약속도 빈말로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 변호사와 새누리당 친박계가 특검의 ‘중립성’을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은, 박 대통령이 특검 임명에 시간을 끌고 수사를 거부하거나 수사 결과를 부정하려는 명분 쌓기로 해석됐다.
박 대통령은 국무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넘기겠다는 방침도 거두어들이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은 8일 국회를 방문해 “여야 합의로 좋은 분을 추천해 주면, 총리로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최근 들어 “박 대통령 퇴진을 전제로 한 총리 추천은 수용할 수 없다”며 ‘조건’을 들고 나왔다. 국정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잇단 말 뒤집기는 야당의 ‘검찰ㆍ특검 수사에서 탄핵 명분 확보→ 총리 교체 → 대통령 탄핵’ 시나리오를 방해하려는 전략이다.
박 대통령이 2선 퇴진을 미적대는 것을 놓고, 청와대 참모들은 그간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정국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술수를 쓰려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참모들이 말한 박 대통령의 ‘순수한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거나, 참모들이 박 대통령의 진심을 오독했을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는 한 동안 “촛불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허리를 숙였다. 불리한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 20일엔 “차라리 법대로 탄핵 절차를 밟으라”며 태도를 바꾸었다. 강경하게 버텨 정권 임기 5년을 채우겠다는 청와대의 오기는 최순실 정국의 출구를 꽉 막고 있다. 박 대통령과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버티기 스크럼’을 짜고 있다는 비판도 무성하다.
박 대통령은 거짓말 사과 논란에도 휩싸였다. 박 대통령은 1,2차 대국민담화에서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이 기업들의 ‘순수한 지원’에 따른 것이었고, 정권 초기에만 최순실씨에게 국정 조언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씨의 공소장에는 박 대통령 주도로 청와대가 기업들에게 자금을 강제 모금했고, 최씨의 국정 개입도 정권 4년 차인 올해 4월까지 계속됐다는 수사 결과가 담겼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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