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비선실세 최순실씨는 막말로도 시대의 아이콘에 등극했다. 식당이건 마사지숍이건 자녀가 다니는 학교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퍼붓는 ‘호연지기’가 가히 빛났다. 덴마크 고급 식당에서는 난데없는 “두 유 해브 김치?”와 “배추가 안 들어간 건 김치가 아니다”의 ‘김치학원론’으로 “예의가 없어서 특별히 기억 나는” 한국손님이 됐다. 마사지숍에서는 예약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와서는 다른 손님 밀어내고 먼저 때를 밀어달라며 행패를 부리는 진상고객이었다. 딸 정유라씨의 지도교수에게 했다는 말이 “교수 같지도 않고 이런 뭐 같은 게 다 있어”였으니 나머지는 말해 무엇하리.
하지만 이것이 최순실이라는 예외적 개인의 일탈이라고는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강남 아줌마’라는 차별적 언어 프레임이 가당치 않게 강북 아저씨와 지역 할아버지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추태이기 때문이다. 공공 에티켓이 실종된 한국사회의 무례함은 이미 수많은 사건사고들을 양산했고, SNS에는 ‘어이순실’의 매너를 규탄하는 각종 게시물이 쏟아진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 Makes Man)’는 말은 영국신사에게나 필요한 규범처럼 인용되지만, 매너란 기실 한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존엄과 만인평등을 라이프스타일로 체화하지 못한 사람이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내재화했을 리 만무할 터. 공동체를 혐오하게 만드는 ‘매너순실’이 혹시 내게는 없는지 점검해볼 때다.
서울 특급호텔 앞에서 벌어진 일
서울의 유명 특급호텔 앞. 호텔 내 술집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신 손님이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며 벨데스크 직원의 멱살을 잡는다. “여기가 호텔인데, 호텔에 왜 택시가 없어? 서비스가 뭐 이따위야.” 호텔 보안직원이 나타나 제지했지만 인사불성이 된 고객은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택시를 잡기 위해 줄을 선 고객들을 무시한 채 “내가 제일 먼저 타야 한다”며 보무도 당당하게 맨 앞자리에 비집고 서자 고객들 사이에서 소란이 빚어진 건 당연지사. 호텔 관계자 A씨는 “의외로 이런 손님들이 호텔에 꽤 많다”며 “새벽이면 호텔 앞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이라고 혀를 찼다.
공공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명확한 공통점이 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돌아가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는 점이다.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대형마트에서 거침없이 카트를 몰고 질주하는 사람에게는 마트 진열대의 물건들만 보일 뿐 타인들은 투명 처리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어폰도 없이 야구 중계나 개그 프로그램을 다시보기 하는 사람들은 남들에게도 청력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이면 너도 좋아하게 마련’이라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세계관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만인이 평등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여러분들끼리의 얘기고 나는 여러분보다 우월하다’고 내심 믿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몰라서 무심코 저지르는 실수’로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한다 해도 무례한 이들에게선 여전히 공통점이 추출된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나, 전체의 일부로서의 나를 조망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세상이 나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꾸 잊고 마는 것이다. 한낱 ‘일원’으로서의 자아개념이 장착되지 않는 한 민주적 시민의식은 함양하기 어렵다.
‘나는 소중하니까’와 ‘너도 소중하니까’
발을 밟거나 어깨를 밀치고도 사과하지 않기, 지하철에서 내리기도 전에 밀치고 타기, 만원버스에서 거대한 배낭으로 찍어 누르기, 영화관에서 앞 좌석에 다리를 올려놓거나 환하게 발광하며 수시로 카톡 하기, 카페나 식당에서 반말로 주문하기, 마트의 샘플 장난감을 우리 아이만 30분씩 갖고 놀게 하기, 변기 시트 위에 소변 흘리기, 비행기에 타자마자 신발 벗고 좌석 한껏 눕히기…. 공중이 모이는 장소면 언제 어디서나 발생하는 무수한 에티켓 실종은 사실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된다. ‘나는 소중하니까~’. ‘개저씨’, ‘개줌마’ 담론으로 프레임화했지만,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도 않는다. 인구밀도가 높고 각자도생이 세계관인 한국사회에서 에티켓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부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나만 소중하다고 우기는 사회에서 에티켓의 A부터 Z까지 일일이 가르치는 일은 그러므로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됐다. 올 들어 유달리 매너 관련 책들이 쏟아진 게 그 방증이다. ‘자기 가치를 높이는 럭셔리 매너’(동문선), ‘일 잘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매너에 있다’(넥서스비즈), ‘에티켓과 매너’(기문사) 등 10여종이나 된다.
지난달 발간된 위즈덤하우스의 신간은 아예 제목이 ‘실례합니다만, 매너를 지켜주시겠어요?’(메건 도허티 지음)다. 바른생활 매너 가이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인간관계, 집, 학교, 직장, 교통수단 등 각 상황별 매너를 만화 형식의 일러스트를 통해 시시콜콜 알려준다. 책을 기획한 정보배 편집자는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예의와 에티켓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일들이 일상에서 너무 많이 벌어지다 보니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가로막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서 “이런 교과서적 매뉴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매너와 에티켓에 대한 요구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반면 인식이나 구체적 가이드는 여전히 미비하다는 것이다.
책이 제시하는 핵심원칙은 간명하다. 어느 것이 에티켓인지 헷갈리고 이것저것 복잡하게 여겨진다면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격언을 적용하면 된다는 것. 나만 소중하다는 각자도생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너도 중요하다는 공감과 공생의 세계관을 갖추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아하고 세련된 ‘항의의 기술’
한 사람의 매너 수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때는 항의의 순간이다. ‘나는 소중하니까’의 이데올로기가 심각하게 침해 당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너 있는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 부당한 푸대접까지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매너로 나오는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매너를 지키며 항의할 수 있다.
세계적 조사통계업체 입소스-라이드는 2009년 23개국을 대상으로 어느 나라 소비자가 가장 항의를 많이 하는지를 조사했다. 한 해 동안 상품이나 서비스를 대상으로 항의를 제기한 적이 있는지를 물은 것이다. 이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불만의 민족’은 브라질이었다. 응답자의 65%가 항의를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멕시코(56%), 아르헨티나(49%), 인도와 체코(47%) 순이었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34%로 공동 16위였다. 가장 항의하지 않는 국가는 응답자의 17%만 항의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일본이었다.
캐나다 저술가 필 에드몬스턴은 이 조사에게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미국과 캐나다 모두 응답자의 44%가 항의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음에도 왜 미국인들은 원하는 것을 쟁취해내는 항의의 달인들인 데 반해 캐나다인들은 호구 취급을 받는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 조사 과정을 담아 쓴 책이 ‘항의의 기술’이다.
항의에는 중요한 순기능이 있다. 결함 있는 상품이나 엉망인 서비스가 널리 알려지지 않는 것은 불의다. 침묵은 공모요 행동하지 않는 것은 비겁함인 것이다. 이에 입각해 도출한 항의의 기술 제1원칙은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말하기다. 문제적 상품이나 서비스로 인해 내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I-메시지’로 말한다. 상대를 비난하는 ‘You-메시지’는 자제하는 게 좋다. 고객불만 접수처의 직원은 안타깝고도 다정한 목소리로 죄송하지만 보증 내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환불은 저희 정책 사항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단계에서 90%의 고객이 성질 한번 화끈하게 부리고 요구사항을 철회하거나 포기한다는 것.
저자는 “여기서 포기하지 말고 정책을 보다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상급자를 찾아 차분하고 정중한 태도로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말할 것”을 조언한다. 전화보다는 대면으로, 말보다는 문서로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증거가 필요하므로 관련 사실들에 관한 문서나 사진, 증언들을 반드시 제시하고, 어떤 해결책을 원하는지 스스로 명확히 한다. 사과인지 교환인지 환불인지 목표를 분명히 한 후 기한과 함께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언제까지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지를 확정하지 않으면 차일피일 미루다 얼렁뚱땅 넘어가기 십상이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중간과정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영어를 쓰든 한국어를 쓰든 ‘말 한 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 것’은 매한가지다. 특히 협상이 결렬 위기에 처하면 흥분하기 쉬운데, 이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겠다고 협박조로 말하기보다는 “예전에는 이 식당을 누구에게나 추천했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못할 것 같네요” 식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게 낫다.
특급호텔 관계자 A씨는 객실 체크인 고객으로 붐비는 시간 끝없이 이어진 대기줄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먼저 인사말을 건네준 고객에게 감동한 적이 있다. “정중하게 객실 상황이 여유로운지 먼저 확인하시더라고요. 짜증이 날 법도 한 상황이었는데, 어찌나 감사하던지. 전망 업그레이드 혜택을 제공해 드린 적이 있어요.” 존 밀턴이 말했다. “불평이 자유롭게 제기되고 깊이 숙고되어 신속히 개혁될 때 비로소 현명한 사람들이 추구하던 시민적 자유가 최대한으로 달성된다.” 매너 있는 항의는 그렇게 민주주의의 척도가 된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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