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이미 제출된 자료로…”
재판장 언급 끝나기도 전에
“국가 의무ㆍ책임 꼭 따져야”
변호사 말에 유족들 흐느낌 터져
특조위도 지난 9월에 이미 해산
“의문 규명” 기자에 묵언의 요청
정호성 前 비서관 증인 신청도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동관 457호 법정. 민사합의10부(부장 이은희) 심리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의 대한민국과 청해진해운 상대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 기일이 진행됐다. “이미 형사 유죄 판결 등 제출된 자료만으로도 손해배상 책임 자체는 판단할 수 있고…”라는 재판장의 말은 채 끝을 맺지 못했다. 유족(원고) 측 신용락 변호사가 말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돼 있다. 어른들의 탐욕과 무책임, 무능 때문에…”라며 그는 울먹였다. “세월호 참사가 국민에게 깊은 상처로 남은 건 정부가 뒷짐만 진 채 바라보기만 했고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민이 재난에 처했을 때 국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며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며 “그렇게 돼야 304명의 죽음이 숭고한 희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방청석에서 희생자 부모, 유족들이 입을 막은 손가락 사이로 울음이 비어져 나왔다. 법정에 서 있던 기자의 팔을 잡아 끌어 앉을 자리를 내 준 한 유족은 눈빛으로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을, 진실을 기록해 달라고 호소했다.
신 변호사의 주장은 형사 판결문 등 자료만으로는 국가의 책임을 묻는 데 충분치 않다는 것이었다. 원고 측은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 행적을 알고 있을 정호성(47)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세월호 7시간’의 의문을 민사소송을 통해서라도 풀어달라는 유족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아울러 이명준 당시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실 행정관과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등 총 30여명을 증인 신청했다. 주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 비협조적이던 이들이었다. 신 변호사는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와 새누리당에 의해 9월 말 강제 해산됐기 때문에 유족에게는 이 손해배상 재판 밖에 (진실 규명의 기회가)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가족들의 시계는 2014년 4월, 그 잔인한 4월에 멈춰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잠시 말이 없던 재판장은 “관련 형사판결 등으로도 충분히 배상 등을 판단할 수 있다고 했지만 증거조사를 더 하는 이유는 유족들이 그 동안 참여할 수 있는 절차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뗐다. 그는 “지금 정국(박근혜 대통령 탄핵 추진과 특검 시행)을 보면 좀더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으나, 재판부가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니 반영해서 재판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장은 민사소송 원칙상 원고가 주장하지 않는 부분까지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은 헤아려달라고 당부했다. 정 전 비서관의 증인채택 여부는 미정이며, 내년 1월 17일에 열릴 다음 재판에서는 참사 당일 구조활동을 벌인 문예식 둘라에이스호 선장의 증인 신문과 유족 1명의 당사자 신문이 이뤄진다.
공판 후 한날 한 곳에서 자식을 잃은 40여명의 부모들은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법정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되지만 재판장은 노란 점퍼를 입은 유족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사진 속 부모들은 ‘아빠 엄마는 지금도 너를 떠나 보내야만 했던 이유를, 진실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어’라고 외치고 있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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