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도 쿠릴열도 반환도 먹구름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직후부터 기민하게 움직였지만 실제 외교상황엔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아베 총리가 사활을 걸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의사를 못박는가 하면, 올해 최대 외교성과로 준비중인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협상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돌연 변심으로 좌초 위기에 빠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22일 “취임 첫날 TPP 탈퇴를 재천명 할 것”이라고 공개 선언하면서 일본 정부는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아베 정부는 아베노믹스의 새로운 돌파구 내지는 성장전략으로 TPP를 제시했던 터다. 특히 아베는 지난 17일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타워에서 직접 만나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미국의 TPP참여를 역설했다. 그럼에도 별 효과가 없었고 TPP 와해 수순이 가시화된 셈이다.
해외방문중인 아베 총리는 22일 아르헨티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미국을 빼고는 의미가 없다. 근본적인 이익의 균형이 무너진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과거 보호주의와 배타주의가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세웠다. 자유롭게 열린 경제야말로 평화와 번영의 초석”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실제 이탈하면 TPP 자체가 붕괴된다는 지적인데 그의 발언에는 힘이 없어 보였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미국대통령 취임전이므로, 발언 하나하나에 코멘트하지 않겠다”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국측이 ‘향후 국내이해를 구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취임후 정책에 대해 예단을 갖고 대응하면 안된다”고 말을 아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러시아마저 태도를 바꾸면서 아베 정부는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일 쿠릴 4개 섬에 대해 “러시아 주권이 있는 영토”라고 못박았다. 푸틴이 트럼프의 우호적 분위기에 일본을 대하는 태도가 느긋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일본 입장을 바꾸지 않았으며 양측 이익을 중시해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고만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는 러시아측과 1,000억엔(약 1조628억원)의 투자기금을 조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내달 15일 야마구치(山口)현에서 진행될 러일정상회담 성과를 위해 경제협력 카드로 영토협상의 반대급부를 계속 압박하는 모습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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