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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혁신을 위한 혁신

입력
2016.11.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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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고유의 키워드가 있다. 1980년대는 ‘관리 (Management)’의 시대였다. 인사관리, 시장관리, 고객관리 등 사업은 곧 ‘관리’와 동의어였다. 1990년대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키워드는 ‘전략’으로 바뀌었다. 사업전략, 기술전략, 마케팅전략, 전략적 의사결정 등 ‘전략’만 갖다 붙이면 다 되는 듯 마법의 주문처럼 유행했다.

오늘날은 바야흐로 혁신의 시대이다. 경영혁신, 조직혁신, 교육혁신, 경제혁신, 사회혁신 등. 그 어떤 대상에도 ‘혁신’이란 단어를 갖다 붙이면 자못 세련되게 보인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기혁신의 시대다. 우리는 마치 ‘혁신’만이 지상 최대의 궁극적 목적인 것처럼 살아간다. 여기도 혁신, 저기도 혁신, 어느 TV 광고처럼 우린 혁신을 혁신하고, 또 혁신하는 것이다.

모바일 산업은 가장 혁신적인 분야 중 하나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만든 것처럼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뀔 만한 것을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고 한다. 구글, 테슬라 등 실리콘벨리 IT 기업들은 이미 새 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유수의 전문가들이 이들의 ‘파괴적 혁신’ 사례를 연구하고, 전 세계의 수많은 청년들은 컴퓨터 한 대만 들고 스타트업으로 뛰어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러한 혁신 외에 새로운 혁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전시성 혁신(Displayed Innovation)’이었다. 최근 폭발한 갤럭시 노트7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처음에는 홍체인식, 더 얇아진 두께, 방수 등 최고급 스펙을 대대적으로 전시하더니,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가장 기본적인 안정성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소비자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기보다는 경쟁사를 의식한 혁신을 위한 혁신을 무리하게 구겨 넣다 보니 폭발하게 된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개발자와 마케터들이 하나라도 더 경쟁사 대비 혁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밤을 새고 있다. 실제로는 아무도 쓰지 않지만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라면 무조건 ‘혁신’이라 여기는 착각에서 비롯한 결과였다.

‘우리는 가본 적도 없는 우주의 물리적 현상은 꿰뚫으면서 자기 동네의 새와 나무는 모르고 인간의 염기배열과 유전정보는 낱낱이 파헤쳤으면서, 자기 아이들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지혜는 모른다.’(굿워크, E.F. 슈마허)

언젠가 독거노인의 고독사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두 개의 솔루션을 본 일이 있다. 하나는 IoT(사물인터넷) 로봇 센서로 독거노인의 체온정보를 측정하고 방 안의 인체 활동여부를 감지하는 최첨단 솔루션이었다. 다른 하나는 훨씬 단순했는데 근처의 배달사원이 매일 집 앞의 배달 우유가 쌓여 있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이틀 연속 우유가 쌓여 있다면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미리 연계된 사회복지사가 방문하게끔 되어 있었다.

어쩌면 우린 거창한 우주를 혁신하려다가 내 자아, 가족들, 옆 동료들의 영혼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스티브 잡스가 되기 위해 허울뿐인 혁신을 위한 혁신에 사로잡히는 건 아닐까.

오히려 내가 진짜 보고 싶은 혁신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쓸데없는 일로 야근하지 않을 수 있는 혁신, 한 시간 아르바이트를 했으면 최소한 밥 한끼는 넉넉히 먹을 수 있는 혁신. 1년 뒤 전세값이 두배 오를 걱정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혁신.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세우며 전시성 성과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스타트업과 자영업자들을 진정성 있게 도와줄 수 있는 그런 혁신.

그리고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검찰은 검찰답게, 언론은 언론답게, 기업가는 기업가답게, 정치인은 정치인답게, 사회 리더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기본적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그런 혁신 말이다.

장수한 퇴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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