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마지막 천하장사에 올랐던 장충체육관에 오니까 그리움 가득한 고향집에 온 느낌이네요.” (강호동)
“난 여기에서 첫 천하장사(1983년)를 했어. 넌 은퇴하고 씨름장에 처음 오잖아. 난 자주 왔어. 한번씩 좀 찾아오고 그래.”(이만기)
민속 씨름의 성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지난 20일 재회한 이만기(53) 인제대 교수와 방송인 강호동(46)이 주고받은 유쾌한 인사다. 둘은 방송에서 종종 만났지만 씨름 대회가 열리는 공식 대회 장소에서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이만기 교수와 강호동은 2016 천하장사 씨름대축제 레전드 팬 사인회에 참석한 이후 체육관 안에서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민속 씨름을 얘기할 때 이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교수는 1983년 4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회 천하장사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총 11차례 천하장사 타이틀을 가져간 ‘모래판의 황제’로 불렸다. 이에 반해 ‘모래판의 반항아’로 통했던 강호동은 1989년 당시 19세의 나이로 당대 최고의 스타 이만기를 누르고 천하장사까지 등극하는 등 5차례 천하장사 가운을 입었다.
씨름의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이 교수와 강호동은 추억에 잠기는 한편 예전만 못한 씨름 인기에 안타까워했다. 이 교수는 “씨름장에 오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나고, 요즘 인기가 떨어져 아련한 마음도 있다”며 “우리는 팬들의 관심 속에 인기를 얻었지만 후배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강호동은 “씨름은 아련하고 언제나 그리운 곳”이라며 “팬들이 있어야 박진감이 넘치고, 힘도 넘치기 때문에 이렇게 사인회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둘의 만남은 자체 만으로 큰 관심을 받는다. 또 만남의 장소가 모래판 위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실제 2010년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1990년 이후 20년 만에 펼쳐진 씨름 맞대결(이만기 2-1 승리)은 긴장감 넘치는 진지한 승부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교수는 당시 방송에서 씨름 대결을 깜짝 제안했던 강호동에게 “선배든, 후배든 씨름 활성화를 시킬 수 있다면 받아들이겠다”며 “10년에 한번씩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아직도 ‘10년에 한번씩 맞대결을 하자’는 제안은 유효한 걸까. 이 교수는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까 잘 안 된다. 지금도 마음은 20대인데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예전 같지 않다”며 웃은 뒤 “한판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호동 역시 “정신이나 마음은 젊은데…”라며 웃음으로 즉답을 피했다.
이와 별개로 이 교수와 강호동은 씨름 발전과 인기 회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고민을 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강호동과) 방송에서 만나는 것과 현장에서 만나는 건 다르다”면서 “사랑스러운 후배와 우리 씨름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대화를 나누고 꾸준히 노력해 나가겠다.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강호동 또한 “씨름인들이 어느 때보다 힘을 보태고 노력해서 팬들에게 사랑 받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