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시간끌기로 국면 전환 노려
새누리당과 헌재는 촛불 외면 못할 것
탄핵 서두르면 내년 봄 조기 대선 가능
박근혜 대통령은 싸움꾼 기질을 타고 났다. 복싱으로 치면 전형적인 인파이터다. 외곽에서 적을 관찰하다가 급소를 발견하면 순식간에 달려들어 제압한다. 아버지 박정희 옆에서 늘 봐 온 권력싸움이 동물적인 감각을 키웠다. 김무성, 유승민 같은 한가락하는 정치인들도 집요한 공격에 나가 떨어졌다.
최순실 사태 초기 박 대통령은 허둥댔다. 아무리 강심장인 그도 언론의 집중포화와 100만군중의 촛불시위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국회를 방문한 박 대통령의 표정을 본 국회의장이 “저러다 무슨 일 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을 정도다. 하지만 오해였다. 그 잠깐 동안의 시간은 자숙이나 반성이 아닌 적의 약점을 찾기 위한 위장용이었다.
야당 대표의 헛발질과 극우세력의 맞불 집회 등으로 기력을 회복한 박 대통령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한일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고 고위직 인사권을 행사하더니 내달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모양이다. 급기야 검찰이 자신을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명시하자 “나를 탄핵하라”고까지 하고 있다. 나름대로 득실 계산이 끝났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의 속셈은 시간 끌기다. 탄핵을 하더라도 헌법재판소 심판에만 최장 6개월이 걸리고, 특검도 4개월이 소요된다. ‘식물 대통령’이라도 내년 상반기까지만 버티면 임기를 채울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 사이 권력을 동원해 촛불시위 분열공작을 벌이고 상대방의 실수를 기다리면서 국면 전환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꼼수는 헛수고로 끝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권 당시 촛불시위에서 실패를 경험한 시민세력은 정권의 노림수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국회나 헌재도 민심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박 대통령 의도대로 굴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1차 관문인 탄핵안 국회 통과에 필요한 새누리당 의원 29명 확보는 의외로 별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제 새누리당 비상시국회의에서 탄핵에 동의한 의원이 32명이고 불참자까지 포함하면 훨씬 늘어난다. 앞서‘최순실 특검법’국회 통과에 찬성표를 던진 새누리당 의원은 58명이나 됐다.
헌재 심판 기간도 단축시킬 여지가 충분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때 주심을 맡은 주선회 재판관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어서 헌재도 공부를 하면서 심판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당시 심판에 걸린 기간은 64일이다. 내년 1월 말 헌재 소장 퇴임을 앞둔 상황까지 헌재가 고려해 서두른다면 50일 정도면 결정이 나올 수 있다. 박 대통령 측이 이번 검찰 수사처럼 시간을 지연시키려 하겠지만 헌재 재량으로 조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보수적 색채가 짙은 헌재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를 우려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보수적인 재판관들이라고 하더라도 법리를 우선하는 법관인지라 탄핵을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헌재는 노무현 탄핵심판 당시 향후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경우에 대비해서 대통령이 탄핵되는 다섯 가지 사유를 명시한 바 있다. 뇌물수수ㆍ공금 횡령 등 부정부패, 명백히 국익을 훼손한 경우, 다른 헌법기관 권한을 침해한 경우, 국가 조직을 이용한 국민 탄압, 국가권력을 이용한 부정선거 등이다. 단 한 가지 기준만 해당돼도 탄핵 사유가 되는데 박대통령은 얼핏 보기만 해도 여러 사유에 해당한다. 야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국회 탄핵소추 결의 시의 황교안 총리 권한대행 체제가 탄핵 발의를 망설이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권한대행이 처리하는 업무가 제한적인 데다 박 대통령을 비호하거나 하면 황 총리도 탄핵시키면 된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시 부통령이 비어 있어 권력서열 3위인 허정 외교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적도 있다.
탄핵안을 서두르면 내년 봄이 오기 전 탄핵이 결정돼 4월 경에는 대선을 치를 수 있다. 그때까지 시민들은 촛불을 꺼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은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 그가 탄핵을 원하니 탄핵으로 고이 보내드려야 한다.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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