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에 대해 “러시아 주권이 있는 영토”라고 밝히자 일본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내달 15일 일본 야마구치(山口)현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4개의 쿠릴섬 가운데 2개를 우선 돌려받는 합의를 끌어내려던 계획에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날 교도(共同)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지인 페루 수도 리마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영토협상을 전제로 한 러일간 평화조약 체결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푸틴의 발언은 영토문제를 포함해 러일 평화조약 체결을 추진중인 일본측에 영토주권이 러시아에 있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으로 자칫 아베 정부가 공들여온 영토협상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푸틴은 쿠릴 4개 섬 중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 2개 섬의 일본 인도 방안을 명시한 1956년 일본과 옛 소련의 공동선언에 대해 “어떤 근거로 누구의 주권하에 있으며, 어떤 조건으로 반환할 것인가가 명기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러일 정부간 협상 흐름과 다소 차이가 있는 언급이다. 그간 일본 정부 일각에선 2개 섬을 먼저 인도받은 뒤 추후 토로후(擇捉), 구나시리(國後)섬 인도를 논의하는 ‘2개 섬 우선반환’ 방안이 거론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9일 APEC 행사를 계기로 열린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 쿠릴 4개 섬에서 이뤄질 양국 ‘공동경제활동’에 관해 협의했다고 이날 밝혔다. 공동경제활동이란 러시아 주권하에 일본이 경제적 측면에서 투자하는 형태를 뜻한다. 일본 측으로선 러시아와 쿠릴 4개섬에서 공동경제활동을 협의한다는 것은 다분히 러시아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아베 총리는 이 같은 푸틴의 발언에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다만 아베는 회담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의 평화조약은 (2차대전 종전 후) 70년이 돼도 체결하지 못한 만큼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며 “한 걸음씩 산을 넘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본에선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후 급속히 가까워질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에 기대 푸틴이 영토협상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후 잇따른 서방 제재를 일본과의 관계개선으로 해소하려던 러시아가 트럼프의 등장으로 조급해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이유에서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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