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정훈/사진=KPGA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왕정훈(21)이 생애 단 한번뿐인 유럽프로골프(EPGA) 투어 신인왕을 예약했다. 지난해 안병훈(25ㆍCJ그룹)에 이은 또 하나의 이정표다. 그러나 왕정훈은 더욱 특별하다. 외국을 돌며 스스로의 길을 연 개척자이자 기득권에 저항한 아이콘으로 골프 꿈나무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왕정훈은 20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의 주메이라 골프장(파72ㆍ7,675야드)에서 열린 EPGA 투어 시즌 최종전인 DP월드 투어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에 보기 1개로 6언더파 66타를 쳤다.
최종 합계 10언더파 278타가 된 왕정훈은 공동 17위에 올라 공동 31위(6언더파 282타)에 그친 신인왕 경쟁자 리 하오통(중국)을 따돌렸다. 신인상은 동료 선수들의 투표로 결정되나 통상 레이스 투 두바이 랭킹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 이 랭킹에서 왕정훈은 16위, 리 하오통은 22위다.
비결은 장타다. 180cm의 왕정훈은 체구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지만 시원한 장타를 주특기로 한다. 2015년엔 평균 300야드(300.44야드ㆍ약 275m)를 넘기도 했다. 여기에 부쩍 좋아진 퍼팅이 올 시즌 상승세에 기름을 부었다. 일찍이 해외 투어를 돌며 값진 경험을 쌓아온 그는 2014년 두바이 오픈 준우승, 지난해 월드클래식 챔피언십 3위로 두각을 나타냈고 올해 하산 2세 트로피와 모리셔스 오픈에서 2주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본격적인 전성기를 열었다
왕정훈은 관계자들 사이에서 희귀종으로 통한다. 편한 길 대신 스스로 고생길을 걸어왔다. 어린 나이에도 혼자 세계 각지를 돌며 투어 생활을 할 만큼 자립심이 강했다. 주니어 시절부터 골프 천재로 주목 받은 그는 국내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필리핀으로 건너가 17세이던 2012년 프로에 뛰어들었다. 그 해 중국프로골프(CPGA) 투어에서 차이나 PGA 2차ㆍ5차 대회 우승 등으로 상금랭킹 1위에 올랐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경제적 부담과 과열 경쟁이 심했던 국내의 실정이 어린 왕정훈을 외국으로 내몰았다. 왕정훈은 아버지로 인해 골프에 입문했고 기초를 배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1년에 20~30개 대회를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혹사를 피하고 선수 생활을 오래할 수 있도록 필리핀으로 유학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정훈은 골프채를 잡고 아직 단 한 번도 다른 프로의 지도를 받은 적이 없다. 아들을 직접 가르치기 위해 티칭 자격증까지 획득한 아버지의 독특한 지도 방법은 일반적인 국내 골프 엘리트 교육과 거리가 멀었다. 또 국가대표를 거쳐 프로로 전향하는 국내 제도권 골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보를 걸었다. 이를 두고 한 관계자는 "제도권을 벗어난 왕정훈은 기득권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라며 "행여 다른 유망주들도 왕정훈을 따라 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상황"이라고 할 만큼 아웃사이더의 성공은 대한민국 골프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골프는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왕정훈이 오랜 병폐를 깬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국내에선 기득권 세력에 견제를 당했고 외국에 나가선 외국인이라고 시기를 받으면서도 오롯이 실력으로 꿋꿋하게 혼자만의 길을 개척해 성공을 일군 왕정훈이 EPGA 신인상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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