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통신硏 개발 ‘엑소브레인’
대학생ㆍ우승 경험자와 겨뤄
2위와 160점 차 압도적 승리
우리나라 기술로 만든 인공지능(AI)이 인간과의 첫 퀴즈 대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자체 개발 자연어 처리 AI 프로그램 ‘엑소브레인’(Exobrain)이 지난 18일 녹화된 EBS의 ‘장학퀴즈’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했다고 20일 밝혔다. 객관식과 주관식이 섞인 30문제의 총점 600점 가운데 엑소브레인은 무려 510점을 기록했다. 2위와의 점수 차도 160점이나 됐다. 엑소브레인이란 ‘몸 밖에 있는 뇌’란 뜻이다.
이날 리허설 때부터 녹화장인 대전 ETRI 대강당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엑소브레인의 상대는 대학생 2명과 고교생 2명. 장학퀴즈 우승 경험이 있는 김현호(안산 동산고 3년)군과 이정민(대원외고 2년)양,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기몰이 중인 오현민(KAIST 수리과학과 휴학)씨는 처음엔 자신감이 역력했다.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윤주일(서울대 인문학부 1년)씨는 “엑소브레인을 이기러 왔다”고 말했다.
대결은 1~3개의 문장으로 이뤄진 문제를 듣고 정답의 번호나 단어를 15초 이내에 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음성 인식 기능이 없는 엑소브레인에게는 문제가 텍스트 형태로 입력됐다. 엑소브레인은 개인용 컴퓨터(PC) 41개 용량의 서버로만 작동됐고, 인터넷 연결은 차단됐다. 총 15문제로 진행된 리허설에선 중반 이후로 갈수록 엑소브레인의 우세가 뚜렷해졌다. 점수 차가 벌어지자 학생들은 당황했다. 결국 단 한 문제만 놓친 엑소브레인이 270점으로 승리했다. 2위인 윤씨(120점)보다 150점이나 앞섰다.
이어 비공개로 진행된 본 대결 녹화에서도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엑소브레인은 본 대결에서도 2위를 기록한 윤씨와 점수 차를 10점 더 벌리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양은 “엑소브레인에게 한 수 배웠다”며 “1년 더 공부한 뒤에 다시 겨뤄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고 아쉬워했다.
자연어 처리 프로그램 특징
질문 의도 파악해 논리적 추론
기계적 학습 ‘알파고’와 달라
엑소브레인은 자연어 처리 프로그램이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자연어의 의미를 분석해 질문 의도를 파악하고, 데이터베이스에서 논리적 추론을 통해 정답 후보를 수백개 뽑아낸 다음 어떤 후보가 실제 답에 가장 가까운지 도출해낸다. 데이터베이스는 책 12만권과 지난 9월까지 신문 내용으로 구축됐다. 자연어 처리와 기계학습(딥러닝)은 인공지능 기술의 두 축이다. 딥러닝이 기계적 반복 학습에 중점을 둔다면 자연어 처리는 논리적 언어 분석이 핵심이다. 특히 엑소브레인은 오답이 나왔을 때 개발자들이 그 과정을 역으로 추적할 수도 있다. 구글이 내놓은 딥러닝 기반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는 특정 수를 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개발을 총괄한 박상규 ETRI 책임연구원은 “엑소브레인이 연습 때보다 실전에서 더 나은 실력을 보여준 점이 고무적”이라며 “자연어 처리 인공지능은 복잡한 전문가 지원 시스템으로도 개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TRI는 2011년 TV 퀴즈쇼에서 우승한 미국 IBM의 인공지능 ‘왓슨’을 따라잡기 위해 엑소브레인을 더욱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번 대결이 엑소브레인에게 다소 유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문제가 고교 교육과정을 뛰어넘는 수준이었고, 엑소브레인에 계산 기능이 없는 점을 감안해 수학은 제외됐기 때문이다. 먼저 버튼을 눌러 맞히는 게 아니라 동일하게 15초가 주어진 점도 인간에게 불리했다. 15초는 엑소브레인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작동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엑소브레인이 출연한 장학퀴즈 프로그램은 12월 31일 오후 5시 45분 EBS에서 방송된다.
대전=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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