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강제모금 합작
朴, 작년 7월 기업들 출연 구상
安은 일정 잡고 전경련에 실무 맡겨
朴이 300억 재단 규모까지 지시
‘미르’ 이름 정해… 崔가 임원 확정
朴대통령은 그대로 安에 전달
K스포츠도 崔가 임원 명단 만들어
정호성에 전달.. 朴 통해 安에게
安은 전경련에 “미르 때처럼 진행”
대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졌다던 미르ㆍK스포츠재단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60ㆍ구속기소)씨, 안종범(57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합작품이었다. 박 대통령은 재단 설립 날짜와 기금 규모까지 구체적인 기획을 맡았고, 최씨가 배후조종을 하며 사실상 재단을 사유화했으며, ‘행동대장’ 안 전 수석이 기업 등을 일일이 만나 실행에 옮긴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20일 검찰에 따르면 미르ㆍK스포츠 재단은 2015년 7월 박 대통령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소속 기업의 출연금으로 재단을 만들겠다는 구상에서 출발했다. 7월 20일 박 대통령으로부터 “10대 그룹 중심으로 회장들과 단독 면담 일정을 잡으라”는 지시를 받은 안 전 수석은 같은 달 24일 창조경제혁신센터 전담기업 회장단 초청 청와대 오찬 간담회 직후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이튿날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과 독대 일정을 잡았다. 직후 박 대통령은 ‘각 300억원’이라는 두 재단의 기금 규모까지 지시했고, 이에 따라 안 전 수석은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에게 재단 설립 실무를 맡겼다.
2015년 10월 리커창 중국 총리 방한에 맞춰 미르 설립은 급물살을 탔다. 같은 달 19일 대통령의 재촉을 받은 안 전 수석은 즉시 이 부회장에게 “급하게 재단을 설립해야 하니 전경련 직원을 청와대 회의에 참석시키라”고 하고, 최상목 당시 경제금융비서관(현 기획재정부 차관)에게 “300억원 규모의 문화재단을 즉시 설립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틀 뒤인 21일 청와대에선 행정관과 전경련 직원들이 모여 회의를 갖고 삼성 현대차 SK LG GS 한화 한진 두산 CJ 등 9개 기업을 상대로 300억원을 받아 재단을 만들기로 한다. 이쯤 최씨는 재단 초대 이사장에 김형수 연세대 교수, 사무총장에 이성한씨 등 임원진 명단과 조직표, 정관을 확정하고 직접 면접해 재단 임직원을 뽑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재단 이름을 ‘미르’로 정하고 이와 함께 최씨가 정한 인사 명단, 재단의 명칭, 사무실 위치 등은 그대로 안 전 수석에게 전달했다.
같은 해 10월 22~24일 청와대에선 미르 초기 임원들과 청와대 최 비서관,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이 3차례 회의를 하며 9개 그룹별 출연금 할당액을 전달하고, 정관과 창립총회 회의록도 작성했다. 김 교수는 24일 최씨로부터 “재단의 기본재산(임의사용 불가 항목) 비율을 크게 낮출 필요가 있다”는 지시를 받아 회의에서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안 전 수석은 “출연금 규모를 3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증액하고, KT 금호 신세계 아모레는 반드시 포함하라”며 “현대중공업과 포스코에도 연락해 보고 추가할 만한 그룹이 더 있는지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결국, 요청 받은 18개 기업 중 이미 문화 분야에 거액을 투자한 신세계와 재무상태가 크게 악화된 현대중공업을 제외한 16개 기업이 재단 사업계획서 등에 대한 사전 검토도 없이 486억원을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또 안 전 수석은 전경련 측에 “재단 미르의 기본재산과 보통재산 비율을 기존 9 대 1에서 2대 8로 조정하라”고 지시해 당초 최씨의 의도를 관철시켰다. 최씨의 의중이 누군가를 통해 안 전 수석에게 전달됐음을 추정케 한다.
청와대가 재단 발족일로 지시한 2015년 10월 27일을 하루 앞두고 미르재단 설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0월 26일 전경련의 긴급 협조 공문을 받은 기업 임직원들은 서울 팔래스호텔에 모여 SK하이닉스의 날인이 빠진 정관과 전경련이 날조한 창립총회 회의록 등 설립허가 신청서류를 작성했다. 문체부 공무원들은 세종시에서 상경해 바로 문체부 서울사무소에 서류를 등록했다. 자발적으로 재단을 설립했다던 전경련은 최씨 뜻을 100% 반영하는 역할만 했다.
K스포츠는 최씨가 기획해 박 대통령을 거쳐 안 전 수석이 만들었다. 2015년 12월 초 최씨는 K스포츠 사업계획서와 정동구 초대 이사장 등 임원진 명단을 이메일로 정호성(47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전달한다. 대통령으로부터 이 내용과 함께 재단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받은 안 전 수석은 다시 이승철 상근부회장에게 연락해 “300억원 규모의 체육재단도 설립해야 하니 미르 때처럼 진행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르 설립 때 경험을 바탕으로 K스포츠는 마찬가지 방식으로 설립됐다. 현대차그룹 등 16개 기업은 K스포츠에 강제로 288억원을 냈다.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는 20일 ▦재단 설립이 상당 기간 여러 논의를 거쳐 추진됐고 ▦모금 과정에서 기업들에 대한 강압이 없었으며 ▦재단 운영 구조상 특정 개인의 사유화가 불가능한 점 등을 들어 “검찰이 기소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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