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에 빠진 대통령’, ‘초현실적 스캔들’. 워싱턴포스트와 AP 등 외신들이 ‘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할 때 쓴 표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국정 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가 무당이란 소문이 돌면서다. 최씨의 무당설은 그의 아버지이자 사이비 종교 영세교의 교주였던 고 최태민씨의 과거 행각과 발언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급속도로 퍼졌다. 최태민씨는 생전에 “최순실이 현몽 같은 영적 능력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몽은 죽은 사람이나 신령이 꿈에 나타나는 것을 일컫는다. 2013년 박 대통령 취임식 당시 ‘희망의 열리는 제막식’ 때 ‘오방낭’이 사용된 것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커졌다. 음양오행설에 바탕을 둔 주술적 관점에서 국가의 행사가 기획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은 느닷없이 샤머니즘의 나라가 됐다. 무당설이 끊이지 않는 최순실씨만이 나라를 흔든 게 아니다. 드라마와 영화에선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주술로 국정을 흔들거나 사람들을 현혹시킨 무당4.

흑주술 쓴 전미선
달이 뜨면 무녀가 찾는 곳은 궁 내 성수청이다. 국무(國巫)인 그녀는 부적을 쓰며 나라의 기운을 다스린다. 사람을 해 하는 흑주술이 특기다. 배우 전미선은 시청률 40%를 웃돌며 인기를 끈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에서 서슬 퍼런 무녀 녹영을 연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극중 대왕대비(김영애)의 명을 받아 흑주술로 세자빈인 연우(김유정)의 숨을 끊는 주술을 밤마다 부렸다. 전미선은 녹영을 연기하기 위해 무술인에 위령제에 추는 춤도 배웠다. 전미선에 따르면 접신할 때 연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기가 너무 빨리는 느낌이라 촬영 중 폴싹 주저 앉기도”했단다. 배우 김수현을 스타로 배출한 ‘해를 품은 달’은 흑주술로 대변되는 무속 판타지와 그를 통한 정치적 음모 등을 그려 시청자들의 관심을 샀다.

‘살’ 날리는 황정민
장승처럼 보이는 말뚝에 대못을 박으며 ‘살’을 날린다. 양손에 칼을 들고 뱅글뱅글 돌며 신을 맞고, 마당에 매달아 놓은 고깃덩어리의 살을 발라 내는 모습이 섬뜩하다. 영화 ‘곡성’(2016)에서 가장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은 무당 일광(황정민)이 굿을 하는 장면이다. 외지인(구니무라 준)이 검은색 닭을 방에 매달아 놓고 굿 하는 장면과 교차 편집돼 스릴을 더한다. 극중 종구(곽도원)의 딸 효진(김환희)을 미끼로 지역의 수호신인 무명(천우희)을 공격하려는 일광의 모습은 섬뜩하다. 한국과 일본 등의 샤머니즘을 다룬 ‘곡성’에는 예상을 깨고 600만 넘는 관객이 몰렸다. 황정민에 따르면 영화 속 굿 장면을 이틀 동안이나 찍었다. 황정민은 교회를 다니는 신자다. 그런 그는 촬영이 끝난 뒤 실제 무당에게서 무당을 하면 잘하겠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곡성’은 근거 없는 소문과 의심이 사람들을 현혹하고 한 마을이 온통 핏빛으로 물드는 비극을 그렸다.

‘화담’의 죽음을 암시한 이용녀
“옆구리에 복사꽃을 조심해.” 노파는 악귀가 든 선비의 미래를 끔찍하게 예언한다. 정신이 반쯤 나간듯한 표정으로 툭 던지는 말 속에 뼈가 있다. 배우 이용녀는 영화 ‘전우치’(2009)에서 도사 화담(김윤석)을 흔드는 무녀를 당차게 연기한다. 신 들린 듯한 눈빛과 서늘한 말투가 압권이다. 화담의 삶을 몇 수 앞서 내다보고, 세상을 주무르려는 그를 오히려 갖고 노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용녀는 ‘무당 전문 배우’로 통한다. 무속인 역할을 많이 맡아 실제 무당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정도란다. 이용녀는 드라마 ‘주군의 태양’(2013)에서도 영매 역으로 나와 존재감을 보여줬다. 무당 연기를 위해 실제 굿하는 곳을 찾아 다니며 공부했다. 이용녀는 한 방송에서 “사람들이 내가 지나가면 무섭다고 피한다”고 웃으며 무당 전문 배우로서의 고충을 들려주기도 했다.

‘오방낭’ 쓴 유지연
“뜻을 이루려면 더 큰 힘을 써야 합니다.” 무녀는 종갓집 규수에 비단 복 주머니를 내민다. 청, 황, 적, 백, 흑색의 오색비단을 모아 만든 주머니인 ‘오방낭’이었다. 박 대통령의 취임식 때 쓰인 주머니다. 무녀는 오방낭을 저주의 부적으로 쓴다. 최근 종방한 MBC 드라마’ 옥중화’에서다. 배우 유지연은 극중 종금(이잎새)이 정난정(박주미)에 해를 끼치기 위해 집안에 들이는 무당으로 나온다. “간절히 바라면 천지의 기운이 마님을 도울 것”이란 대사도 던져 시청자들의 관심을 샀다. 박 대통령이 연설문에서 종종 썼던 “우주의 기운”을 패러디한 대목이다. 실제로 ‘옥중화’에서는 문정왕후(김미숙)와 정난정이 무속신앙과 무당에 의지하는 모습이 여럿 나왔다. 정난정이 조선시대 국정을 농단한 것과 현실 속 최씨의 국정 농단과 묘하게 겹친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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