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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들을 악마로 만들었나

입력
2016.11.1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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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성범죄, 정신질환…

두 베테랑 범죄 전문가가 파헤친

반사회적 강력범죄의 동기ㆍ심리

범죄 예방ㆍ교화의 단서가 되다

2007년 제작된 영화 '추격자'의 한 장면. 배우 하정우(왼쪽)가 열연한 살인자 '지영민'은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은 연쇄살인을 벌이고도 태연하기만 했던 실제 범죄자들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다.
2007년 제작된 영화 '추격자'의 한 장면. 배우 하정우(왼쪽)가 열연한 살인자 '지영민'은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은 연쇄살인을 벌이고도 태연하기만 했던 실제 범죄자들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다.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이수정 김경옥 지음

중앙M&B 발행ㆍ340쪽ㆍ1만4,000원

2003년 가을, 한 낯선 단어가 겁에 질린 한국사회를 서늘하게 파고들었다. 사이코패스(psychopath). 11개월 만에 일면식도 없는 노인과 여성 21명을 살해한 유영철을 이해하기 위해 동원된 유일한 실마리였다.

원한도 없이 그저 때리고 죽이기 위해 살인한데다, 지문을 도려내고 시신을 토막 내고 그 앞에서 밥까지 먹는 등 잔혹의 극치를 보인 그의 모습에 세상은 아연실색한 터였다. 죄책감을 보이기 보단 그러고도 5명을 더 죽였다고(실제 입증되지 않음) 자랑하는 이 가해자의 존재로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라는 인격장애 증세를 또렷이 뇌리에 새겼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후로도 끊이지 않은 잔혹 범죄를 맞닥뜨릴 때마다 한국사회는 ‘사이코패스’ 판독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는 갈수록 끔찍해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강력범죄의 동기와 심리를 열어 보이는 책이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와 경찰청 범죄분석요원 1기 출신인 김경옥 프로파일러가 함께 썼다. 범죄 심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는 이들을 위한 대중서이자 예비 프로파일러에게 유용할 입문서쯤 되겠다.

1~6부로 구성된 책은 각 장에서 사이코패스, 성범죄, 정신질환, 성격장애, 충동조절장애, 한국형범죄 등을 다룬다. 알려진 것처럼 반사회적 강력범죄의 양태는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만큼 충격적”이다. 각 사건에서 드러나는 사이코패스의 기질은 과도한 자존감, 자극추구, 병적 거짓말, 사기성, 죄책감 결여, 공감능력 결여, 기생적 생활방식 등으로 요약된다. 타인의 고통이 전혀 아파하지도, 공감하지도 않으며 단순히 자극을 느끼기 위해 폭행과 살인을 저지르고 교묘하게 수사를 교란하기까지 한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악마’로 규정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지만 저자들은 각 개별 수사, 면담 사례를 통해 “이들 모두는 각기 다른 생각과 습관을 거쳐 범행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을 설명해간다. 변명으로는 가당치 않겠으나, 두 번의 징역과 전자발찌 착용에도 또 다시 강간에 살인을 저지른 Y와 웃음소리가 나는 가정집에 난데없이 들이닥쳐 망치를 휘두른 살인범 O에게는 걸핏하면 아내를 폭행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는 지도 모른 채 제 아이를 죽인 주부는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그렇다고 다 살인 하냐” “범죄자 사정까지 일일이 봐줘야 하냐”는 책망보다 적극적인 이해와 조치가 절실한 이유는 언젠가 이런 이들이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오거나, 출현한다는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두 저자가 어두운 심연에서 엉킬 대로 엉켜버린 범죄심리의 실타래를 끈질기게 풀어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두 베테랑 분석가들이 풀어낸 이런 ‘프로파일링 노트’를 따라가다 보면 가해자들이 건너온 사고의 오류를 어렴풋이나마 헤집게 된다. 그리고 이 작업이 막연한 짐작보다 훨씬 절실한 조치라는 생각에 이른다.

“몇 년 전에 순천교도소에서 사형수를 만났는데, 그와의 짧은 대화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이번 생은 이걸로 끝이니까요.’ “ 이런 강력 범죄자를 자포자기의 심정, 될 대로 되라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에 돌려보내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또 있을까. 미국은 성도착증을 고치지 못한 성범죄자는 형이 끝나도 사회로 돌아갈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제하며, 각 수감자에 대해서도 매우 개별적인 면담과 분석을 거쳐 ‘재범’의 위험을 관리한다.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어디서 문제가 시작됐는지 분석한 뒤 문제해결을 위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사회적 리소스들을 끌어들이는 일”은 무거운 형량이나 전자발찌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절실한 문제다. 어쩌면 아무리 아까워도 교화 예산을 줄이자고 무턱대고 외치지 않는 것, 가해자가 ‘악마’로 불리는 게 영락없는 상황에서도 악마화를 경계하는 것이 작은 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단 얘기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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