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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화양연화]광화문에서 빅토리아폭포가 생각난 이유

입력
2016.11.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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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카슈가르의 이드가 모스크에서 기도하고 있는 위구르인. 이드가 모스크는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가장 큰 모스크다.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카슈가르의 이드가 모스크에서 기도하고 있는 위구르인. 이드가 모스크는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가장 큰 모스크다.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로 꼽히는 빅토리아폭포. 그 동네 사람들은 ‘천둥 치는 연기’라는 뜻의 ‘모시오야퉁야’라고 부른다. 천둥 치는 연기라니,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더 적당한 이름도 없겠다 싶었다. 폭포에서 피어오르는 물방울이 협곡을 뒤덮어 연기처럼 보이는 거대한 물안개를 만들어냈다. 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모든 세상이 잠든 새벽이면, 폭포가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폭 1,800m에 낙차는 108~150m. 바로 앞에서 본 폭포의 장엄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짐바브웨에는 빅토리아폭포의 장엄함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환율이었다. 아프리카에 사는 친구는 “절대로 길거리에서 환전하면 안 돼”라고 당부했다. 유치장 신세를 질 수도 있다는 그녀의 말에, 100달러 지폐 두 장을 들고 은행에 갔다. 은행 환율은 1달러에 6,000 짐바브웨달러(Z$). 단 두 장 건넸는데, 돈다발이 돌아왔다. 무려 120만Z$. 백만장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기분이 바뀌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맡겨놓은 세탁물을 찾기 위해 10달러 지폐를 냈더니, 거스름돈으로 2만4000Z$를 내줬다. 은행 환율로 따지면 1만2000Z$만 받으면 되는 상황이라, 더 내준 것 아니냐며 돈을 돌려줬다. 세탁소 언니는 계산이 맞는다며 받지 않았다. 분명해진 것은 여행사에서였다. 래프팅 예약비를 내려고 했더니, 1달러에 1만5000Z$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잠시 숨이 멎을 뻔했다. 1달러 가치가 다 달랐다. 은행에서는 6,000Z$, 세탁소에서는 1만2,000Z$, 여행사에서는 1만5,000Z$. 2만4,000Z$까지 오르기도 했다. 은행과 비교해 4배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거리의 모든 주유소는 ‘기름 없음(NO FUEL)’이라는 간판을 내놓고 있었다. 식료품점에 있는 코카콜라는 매일 가격이 달라졌다. 현지인 친구 오스카에게 물었다. “이렇게 묻는 게 실례지만, 왜 이러니”라고. “우리가 더 괴로운 거 알지, 무가베 때문이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짐바브웨 상황은 알면 알수록 점입가경. 안타까움만 밀려들었다.

광화문광장에 앉아 구호를 외치다 보니, 10여 년전 오스카와 대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소름이 돋았다. 무가베의 버티기로 10년 전보다 지금은 상황이 더 악화하였기 때문이다. 10년간 짐바브웨의 인플레는 더 심해졌다. 한때는 1달러가 3경5,000조Z$에 이를 정도였다. 무가베의 장기 독재와 부패는 ‘아프리카의 진주’라고 불리던 짐바브웨를 파탄의 늪으로 빠트렸다. 올해 92세인 무가베. 1980년 초대 총리 자리에 오른 이후 36년째 짐바브웨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그는 2018년 차기 대선에도 출마할 생각이란다. 아름다운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11월의 주말. 100만 국민이 한마음으로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를 보며 짐바브웨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중심도시인 우루무치. 고속도로 톨게이트 한쪽에 길게 이어진 줄이 눈에 들어왔다. 함께 차를 타고 있던 중국 국적의 친구에게 물었다. “우리는 줄 안 서?” 답은 간단했다. “위구르족 검문이야. 신경 안 써도 돼.” 위구르족 땅에서 위구르족을 검문하다니. 한족들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위구르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싶었다.

실크로드 도시 아커스에서 카슈가르까지 가는 야간버스를 탔을 때였다. 버스는 오후 7시에 출발해 새벽 4시에 카슈가르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버스를 가득 채운 승객은 나만 빼고 모두 위구르 사람들이었다. 피곤해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누군가 툭툭 치며 깨웠다. 검문을 받아야 하니 내리라는 것이었다. 새벽 1시, 2시, 3시 검문은 밤새 7번이나 이어졌다. 외국인인 내가 느끼는 불편은 빙산의 일각일 텐데, 이들은 얼마나 힘들게 사는 것일까. 선조들이 살아온 내 땅에서 주인으로 살지 못하는 설움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광화문에서 하야와 퇴진 다음으로 우리가 외친 구호는 ‘국민이 주인이다’였다. 국가는 왜 존재하며, 대통령의 임무는 무엇이고, 국민은 누구인가. 여행 가방을 싸는 대신, 본질에 대한 질문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다.

11월 12일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김제동 씨는 꿈이 있다고 했다. 미래 아들에게 꼭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선배들이 남북평화협정을 체결해 통일 대한민국을 만들어놓았고, 너는 대구 부산 광주 어디에서든 KTX를 타고 평양을 거쳐서 유럽으로 신혼여행 갈 수 있는 나라를 우리 선배들이 만들어 놓지 않았느냐. 동북아에서 힘의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놓지 않았느냐. 우리 진짜 열심히 해서 이런 나라를 만들어놓지 않았느냐.” 그 나라를 오늘도 촛불을 든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인이니까.

채지형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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