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특검서 최소한의 조사 받기 의도

최순실·안종범·정호성 공소장
20일 기소 후엔 靑 입수 가능
내용 파악한 후 사전 준비 나서고
朴 참고인 조사 또 연기 가능해
박근혜 대통령(왼쪽 사진)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변론 준비를 마친 뒤, 다음주에는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17일 밝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60ㆍ구속)씨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이번 주 안에 조사를 받아달라던 검찰의 간곡한 요청을 끝내 뿌리쳤다. 검찰은 “의혹의 중심”에 있다는 박 대통령 진술을 들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뒤, 최씨를 재판에 넘기려 했으나 이 같은 애초 구상도 어그러져 버렸다.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라던 박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도 사실상 빈말로 끝나 버리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17일 오후 5시40분쯤 A4 용지 2쪽 분량의 자료를 내고 “최대한 서둘러 변론 준비를 마친 뒤, 내주에는 대통령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검찰이 희망한) 16일 조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사건 파악 등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이번 주중 조사에 불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에서 ‘내주’를 언급한 것 말고는 특별히 달라진 게 없었다. 이날 하루 종일 “조사일정 등에 대한 입장 자료를 준비 중”이라고 하다가 내놓은 발표문치곤 너무 싱거워 당혹스러운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 측의 의도는 한마디로 최씨와 안종범(57ㆍ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47ㆍ구속)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 핵심인물 3인방의 공소장을 분석한 뒤 검찰 조사에 임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최씨의 구속 만기일인 20일에 맞춰 이들 3명을 일괄 기소할 방침이다. 그럴 경우 청와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변호인이나 법무부 등을 통해 공소장을 입수, ▦검찰이 이들의 범죄혐의를 어디까지 밝혀 냈는지 ▦박 대통령의 연관성을 어느 정도로 보고 있는지 등을 파악할 수가 있다. 다음주 검찰 조사에 앞서 충분한 사전 대비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실제로 다음주에 박 대통령 조사가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검찰 수사대상이 “아직 변론 준비가 덜 됐다”며 출석일자를 미루는 것은 다반사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아직 법적으로 참고인 신분이어서 검찰이 출석을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내주 중 조사 협조’라는 말로 일단 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면서 시간 끌기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유 변호사가 이 같은 입장자료를 낸 시점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최순실 게이트 특검법’이 통과된 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다. 어차피 특검 수사가 확정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굳이 검찰 조사까지 받으려 하진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검찰 입장에서도 박 대통령을 최대한 빨리 조사해야 할 이유가 이제는 사라졌다. 최씨 등 3명의 기소와 함께 미르ㆍK스포츠재단 강제모금 의혹 및 청와대 내부 문서 유출 사건에 대해 검찰이 파악한 ‘큰 그림’은 공개된다. 수사 기밀을 유지한 채로 박 대통령을 상대하기가 불가능해진 만큼 조사일정이 이전만큼 중요하지는 않게 됐다. 게다가 특검법 통과는 어떤 식으로든 검찰의 수사 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앞으로 남은 경우의 수는 대략 세 가지다. 우선 다음주쯤 검찰이 박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뒤 최씨 등의 공소장을 변경하는 시나리오가 있다. ‘박 대통령과 공모하여’나 ‘박 대통령 지시를 받아’ 등의 표현을 추가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 또, 시점이 언제가 되든 박 대통령 조사는 검찰이 하되, 그 이후의 처분은 특검에게 넘기는 방안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박 대통령 측 태도를 보면 검찰 조사를 건너뛰고 특검 조사만, 그것도 최소한으로 받으려 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날 유 변호사의 입장문 중에는 “수사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만드는 수사기밀 유출, 범죄혐의와 관련 없이 개인의 인격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는 최근 언론 보도도 있는데 자제해 달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겉으로는 피의사실을 공표하지 말라는 부탁이지만, 그 속내는 ‘더 이상 박 대통령을 압박하지 말라’고 검찰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로 읽힌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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