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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르 꿀꺽' 카사노바가 사랑한 굴

입력
2016.11.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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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은 그 자체로 맛과 향이 풍부하다. 가장 맛있게 굴을 먹는 방법은 갓 깐 것을 연한 소금물에 가볍게 헹궈 그대로 먹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굴은 그 자체로 맛과 향이 풍부하다. 가장 맛있게 굴을 먹는 방법은 갓 깐 것을 연한 소금물에 가볍게 헹궈 그대로 먹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18세기의 대표인물이자 역사적인 쾌락주의자 카사노바가 사랑했던 것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그는 맛있는 음식의 쾌락 역시도 정력적으로 즐겼다. 바람둥이이자 미식가로도 이름난 카사노바는 매일 아침 생굴을 50개나 먹고 그날의 연인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 굴은 종종 남성 정력제로 꼽히기도 한다. 바람둥이에게 잘 어울리는 아침 식사다.

한국 밖으로 나가면 굴은 비싼 식재료다. 해외의 오이스터 바에 가면 다양한 종류와 산지의 굴을 한 데서 맛 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 밖으로 나가면 굴은 비싼 식재료다. 해외의 오이스터 바에 가면 다양한 종류와 산지의 굴을 한 데서 맛 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외교관이었던 카사노바가 한국에 근무했다면 식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굴에 있어서는 한국은 축복 받은 땅이다. 한국처럼 굴값이 헐값인 나라가 흔치 않다. 해외에는, 가까운 일본이나 홍콩만 가도 굴을 전문적으로 파는 오이스터 바가 흔한데, 그곳에 가서 굴을 실컷 먹다 보면 형벌 수준의 계산서를 받아 들게 된다. 굴은 어딜 가나 고급 식재료 대접을 받고, 값도 비싸다.

동시에 한국은 저주 받은 땅이다. 석화, 통굴, 각굴, 망굴, 깐굴, 알굴 등 굴을 부르는 말은 많은데 알고 보면 그 굴이 다 같은 굴이다. 오이스터 바라는 게 단지 굴을 배 터지게 먹는 콘셉트가 아니다. 각기 다른 산지에서 난 각기 다른 종류의 굴을 취향대로 골라 주문하는 것이 콘셉트다. 일례로 오목한 국자 모양 패주를 가진 굴은 한국선 나지 않는데 생김새부터가 다르고 맛도 판이하다. 한국 굴은 실상 종류가 구분되지 않아 의미 없고, 키운 환경에 따라 다소의 특징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굴은 절묘하게도 영어로 된 달 이름에 'r'이 들어간 달에만 먹는다. 9월부터 4월까지(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 JanuaRy, FebRuaRy, MaRch, ApRil) 먹을 수 있고, 5월부터 8월까지(May, June, July, August)는 못 먹는다. 수온이 올라가면 맛이 맹탕이고, 굴이 산란하는 시기엔 독성을 품어서다. 가장 맛이 좋은 건 날이 확 추워지는 11월 말부터 1월 하순까지다. 11월에 접어들자 겨울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남해의 양식장에선 벌써부터 굴을 끌어올리고 있다. 동네 슈퍼마켓에 봉지 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가에 앉아 굴을 구우면 하나씩 빼먹는 재미에 굴껍질이 사방으로 튀어도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불가에 앉아 굴을 구우면 하나씩 빼먹는 재미에 굴껍질이 사방으로 튀어도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자란 환경 따라 맛도 다르다

굴 양식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양식 방법이 곧 지역을 나타내기도 한다. 슈퍼마켓부터 백화점, 재래시장 어딜 가나 가장 흔한 것이 남해 쪽의 수하식 양식 굴이다. 대개 6월경부터 까만 점 같은 굴의 유생들이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데 가리비나 조개 껍데기를 엮어 바닷물에 빠트려 놓으면 유생이 저절로 와서 붙는다. 몇 달 후 유생은 어른 굴이 된다. 남해의 겨울 바다에는 눈이라도 내린 듯 하얗게 메운 부표가 장관을 이룬다. 흰 부표 아래로 퉁퉁하게 자란 굴이 매달려 있다. 굴 양식 어민들은 새벽부터 찬 바람을 가르고 바다에 나가 하루에도 10톤 넘게 굴을 끌어올린다. 남쪽 바다의 추수는 겨울에 한다.

굴은 양식이라고는 하지만 먹이를 주는 등 인공을 가하지 않고 단지 굴이 자랄 만한 환경만 조성해주는 것이다 보니 야생에 가깝다. 성장 과정 내내 바닷물 속에 잠겨 영양분을 배불리 먹은 남해 굴은 성장이 빠르고 몸집도 크다. 잘 자란 것은 흰 돼지 같이 뒤룩뒤룩하게 새하얀 알이 꽉 차있다. 굴을 ‘바다의 우유’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전국 굴 생산량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경남 통영의 굴은 딱 우유 같다. 한껏 살이 오른 고소함이 입 안에 가득 찬다. 껍질을 까지 않은 각굴(석화, 통굴, 망굴), 알만 발라낸 깐굴(알굴) 혹은 바닷물과 함께 포장한 봉지굴 등 형태로 유통된다. 각굴을 소매상이나 식당에서 한쪽 껍질만 까면 반각굴(하프셸)이 되는데 산지에서 가공해 올리는 경우도 있다.

굴은 드라이한 화이트와인 샤블리나 샴페인과 궁합이 아주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굴은 드라이한 화이트와인 샤블리나 샴페인과 궁합이 아주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굴의 유생들이 서해의 갯바위로 가서 붙으면 진정한 의미의 자연산 야생 굴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자란 굴은 상품 가치를 하기엔 양도 적고 품도 과하게 든다. 서해 굴이라고 해서 파는 것도 대개 양식 굴이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서해에서는 갯벌에 돌을 던져 놓거나 나무로 지주를 세워 굴의 유생이 붙어 자랄 터전을 만든다. 각각 투석식, 지주식 양식이라고 한다.

고요하고 안락한 바닷물에 잠겨 호의호식하는 남해 수하식 굴들에 비해, 서해 갯벌의 굴들은 고된 성장 과정을 거친다. 갯벌은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들고 난다. 물이 들어올 때는 먹지만, 물이 나갔을 때는 굶는다. 어떻게 해도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의 차이다. 서해 굴들은 많이 먹지 못하니 자라기도 더디게 자란다. 남해 굴보다 덩치가 훨씬 작다. 대신 옹골차게 압축된 향을 갖는다. 남해 굴 특유의 크리미한 호사로움은 없지만 근육질 몸뚱이에 바다 향을 꽉꽉 채워 놨다. 남해 굴이 우유라면, 서해 굴은 우유를 숙성한 치즈다. 남해 굴과 서해 굴은 촘촘한 마블링의 등심 스테이크와 쫀쫀하게 말린 육포 사이의 간극만큼 맛의 개성이 다르다. 서해 굴은 알이 잘아서 각굴로는 유통되지 않는다.

크게 나눠서 굴을 남해와 서해로 구분했지만 같은 남해에서도 환경의 차이에 따라 굴 맛은 확확 달라진다. 예를 들어 통영에서 서쪽으로 더 치우친 고흥 굴은 같은 수하식이라도 찌릿한 향이 더 강하다. 서해에서도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향이 점점 강해진다. 군사분계선과 면한 연평도 아래 덕적도 굴은 맛이 꽤 쨍했다. 그러다 보니 ‘굴 귀신’으로 통하는 식당 주인이나 미식가들은 저마다 특정 산지를 찍어 놓고 그 굴만 고집한다.

섬진강 유역에서 나는 벚굴은 굴 맛이 환경에 따라 변하는 극단적인 예다. 굴 유생이 강 하구까지 올라와 강바닥의 바위에 붙어 자란 것인데 거인 발자국 정도로 쑥쑥 자란다. 겨울을 지내고 벚꽃잎 날릴 때 먹는 굴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굴도 있다. 태안, 서천 등지에서 양식하는 오솔레 굴이다. 이 굴은 양식 방법이 색다르다. 노르망디의 양식법을 가져왔다고 한다. 넓적한 판에 펼쳐 놓고 갯벌에서 키우는데, 산란을 조절할 수 있어 여름에도 먹을 수 있다. 동해에서는 굴이 나지 않는다고들 알고 있지만 잘못 알려진 상식이다. 동해 해수면 아래에도 굴이 바위에 붙어 자란다. 사시사철 바다에 잠겨 몇 해를 자라니 덩치도 엄청 크다. 남자 주먹만 한 게 보통이다. 잠수종을 쓴 ‘머구리’가 바다에 들어가 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굴튀김 사랑은 유명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굴튀김 사랑은 유명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굴튀김, 생굴…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굴을 먹는 방법이야 다양하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 쓰기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는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항상 예로 등장하는 바삭한 굴튀김은 생맥주와 영혼의 짝을 이루는 겨울철 단골 안주다. 뜸들일 때 살 오른 굴을 툭툭 얹은 굴밥에 나박 썬 무와 함께 시원한 맛으로 환생한 굴국, 갖가지 향채와 갖은 양념으로 무친 화려한 굴무침까지 한 상 차려 먹으면 질리는 법이 없다. 거기에 노릇하게 부친 굴전까지 더한다면 감격스러울 정도. 껍질을 까지 않은 채 그대로 한 김 쪄 입을 열 때 살을 빼먹으면 부드러운 향이 일품이고, 활활 타는 불에 통째로 구우면 굴 까먹는 데에 쏙 빠져 굴껍질이 사방으로 튀어도 모른다. 겨울을 지나쳐 굴 맛이 그리울 때면 매콤하게 무친 서산 어리굴젓, 새카맣게 삭힌 고흥 진석화젓이 중후하게 아쉬움을 달래준다.

그러나 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날 것 그대로 먹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바닷가 갯바위에서 갓 쪼아내 차가운 바닷물에 한 번 헹궈 먹는 굴이 가장 맛있다. 그 다음이 싱싱한 각굴을 직접 따서 소금물에 가볍게 헹궈 먹는 것이고, 누군가 따서 헹궈 내준 반각굴은 그 다음을 잇는다. 그대로 먹는 것이 심심할 때는 레몬즙이나 라임즙, 와인비니거, 셰리비니거, 발사믹비니거, 핫소스 등을 조금 쳐서 신맛과 붙여 놓으면 매우 잘 어울린다. 굳이 초고추장으로 굴 향을 뒤덮지 않더라도 굴 먹는 법은 많다. 초고추장을 푹 찍어 먹는 굴에는 또 그 나름의 익숙한 맛이 있지만 말이다. 굴을 맛없게 먹겠다고 작정했다면 수돗물에 박박 씻어 보자. 향이 다 빠지고 물컹한 질감만 남는다. 먹을 것이 못 된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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