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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책 변화보다 보혁 양극화 더 심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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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책 변화보다 보혁 양극화 더 심해질 것”

입력
2016.11.17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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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연합뉴스 자료사진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당 등 기존 변수 유효한 데다

州 선거인단 승자독식제로

막말, 경합주 승리 원동력 작용

도널드 트럼프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40년 미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공직이나 군 경력이 없는 대통령이고, 내년에 만 70세로 취임하는 최고령 대통령이다. 많은 이들이 트럼프 승리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한탄하고 있다. 또 트럼프의 승리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등의 질문이 쇄도하고 있다.

공화당 트럼프의 승리를 설명하는 많은 견해가 있지만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견해는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반란,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라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5대호 주변의 중서부 지역은 과거 미국 제조업을 이끌어가던 경제성장의 엔진이었지만, 현재는 몰락한 백인 중산층 노동자들의 분노가 가득한 곳이다. 본인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공약보다 자신의 불만을 “솔직히” 말해주고 위로하는 트럼프에 더 열광했고 이것이 투표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또 꾸준히 약점으로 보이던 정치적 아웃사이더 이미지와 반 엘리트적 정서가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트럼프의 슬로건은 2008년 버락 오바마의 것과 유사한 ‘변화’이며, 퍼스트레이디ㆍ상원의원ㆍ국무장관을 거친 힐러리 클린턴의 풍부한 경험은 기득권 이미지와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의 표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견해는 선거 전체 판도를 모두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러스트 벨트’의 경우 트럼프가 아주 간신히 승리한 것이어서 그들의 ‘열망’을 담았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당일체감-인종-소득 등 기존의 설명변수가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따라서 2016년 대선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오류를 범해서 향후 미국 정치와 민주주의의 방향에 대해 잘못된 시사점을 줄 수도 있다.

오히려 트럼프 승리의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선거인단제도(electoral college)라고 불리는 미국의 독특한 대통령 선거제도이다. 트럼프는 미국 전체 득표율에서 클린턴에게 졌지만 선거인단 수로는 306대232의 대승을 거두었다. 해당 주에서 한 표라도 많이 득표한 후보가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제도 때문인데, 이번 선거에서는 전체 50개주의 4분의1 정도인 12개 경합주를 중심으로 선거운동이 집중되었다.

당연히 이들 경합주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미국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는 이곳의 유권자들 중 자신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이들에게만 어필했다. 얼핏 표를 깎아먹기 좋아 보이지만, 인종갈등을 유발하거나 히스패닉에게 비우호적인 발언은 이들 경합주에서 오히려 기존 공화당이 가지고 있지 않던 새로운 지지층을 만들어 내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을 설득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초박빙의 경합주 여러 곳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나아가 많은 선거인단을 가져갈 수 있었다. 승자독식의 선거인단제도가 아니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선거전략이자 승리의 시나리오이다.

트럼프 승리의 두 번째 요인은 투표율이다. 선거일이 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조차도 투표율이 60%를 넘기가 힘든데, 선거운동의 관건은 자연히 어느 후보가 더 많은 사람을 투표소로 가게 할 것인가이다. 특히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향을 보았을 때 투표율이 낮아지면 민주당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클린턴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이 점을 감안하고 2012년과 올해 대선을 비교해 보면 특이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데, 펜실베이니아 주를 제외한 모든 경합주에서 투표율이 낮아지면서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승부의 분수령이 된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1.9% 포인트, 미시간은 2.8% 포인트, 그리고 위스콘신은 4.8% 포인트 정도 투표율이 떨어졌다. 투표율이 비슷했거나 올랐다면 승부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이다.

여기에 더해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인 흑인, 히스패닉, 그리고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하락하고 클린턴을 향한 결집력도 약화되었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흑인들은 2012년 93%가 오바마를 지지했지만 올해는 88% 정도만이 클린턴을 지지했다. 히스패닉은 2012년 71%에서 올해 65%로 지지율이 떨어졌고, 30세 미만의 젊은이들은 2012년에 비해 7% 포인트 감소한 53%만이 클린턴을 지지했다. 경선이 끝난 후 오랜 기간 동안 손쉬운 낙승을 예상했던 탓인지 오히려 ‘집토끼’ 단속에 실패한 것이다.

진보ㆍ보수 이념 차 부각되지만

공화 주류ㆍ민주ㆍ여론 견제에

급격한 정책 변화 추진엔 한계

그렇다면 우여곡절 끝에 당선된 트럼프는 과연 미국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정 정도의 변화는 있겠지만 한계가 더 커 보인다. 정책의 측면에서 변화는 미미할 것으로 보이고 오히려 민주ㆍ공화, 그리고 진보ㆍ보수의 차이가 부각되면서 양극화가 한층 더 심화될 것이다.

얼핏 보면 연방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공화당이 트럼프와 함께 미국을 보수적인 방향으로 쉽게 바꿀 것 같다. 하지만 상원에 존재하는 필리버스터가 관건이다. 단 한 명의 상원의원이 원하더라도 무제한 토론 및 의사진행 방해가 가능한 제도인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60명 이상 상원의원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공화당이 다수당이기는 하지만 52석만을 차지하는데 그쳐서, 48명의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필사적으로 저지할 경우 트럼프의 공약이 상원을 쉽게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공화당 주류 정치인들의 반대와 제동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정책 중 많은 것들이 공화당 입장을 반영한 것이긴 해도, 불법이민자의 일괄 추방이나 보호무역주의 정책들은 재선을 해야만 하는 공화당 의원들 입장에선 꺼릴 수밖에 없는 이슈이다. 경합주 출신의 상원의원들과 이번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이긴 하원의원들을 중심으로 저항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국민들의 여론이다. 아무리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를 지지한 국민들보다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이 더 많았다. 더구나 이들은 트럼프에 대해 성추문 스캔들이 있는 ‘수준 이하’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데, 트럼프의 일방적인 행보가 많은 저항을 부를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오히려 트럼프 지지자와 반대자를 중심으로 감정의 골이 더 커지면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을 정도의 극단적 양극화가 일어날 수 있다.

물론 변화가 예상되는 부분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연방대법관 지명이다. 지난 2월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 사망으로 공석이 된 자리에 오바마 대통령이 메릭 갈랜드 법관을 지명했으나,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상원에서 인준 거부로 아직까지 공석이다. 현재 8명 연방대법관 중 보수성향이 4명이고 진보성향이 4명이기 때문에, 이번에 트럼프가 보수성향 대법관을 지명하고 인준에 성공한다면 입법ㆍ행정ㆍ사법부 모두 보수적인 성향이 된다.

그 다음으로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이민규제정책의 변화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공화당 의회를 피해서 행정명령으로 불법체류자의 강제추방을 유예해 왔는데, 이 행정명령이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 또 오바마케어에 대한 전면적인 백지화는 어렵더라도 보수적인 방향으로 어느 정도 수정은 이루어질 전망이다. 선거 기간 동안 모든 정책에서 클린턴과 차별됨을 강조했지만, 실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박홍민ㆍ미국 위스콘신대(밀워키)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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