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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최 선생님’은 하야를 컨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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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최 선생님’은 하야를 컨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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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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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는 최순실(왼쪽)씨와 최씨를 '최 선생님'으로 불렀다는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는 최순실(왼쪽)씨와 최씨를 '최 선생님'으로 불렀다는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최 선생님’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아아~ 고마워라, 최 선생님의 사랑.’ 최 선생님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 ‘아아아~ 보답하리~, 최 선생님의 은혜.’ 노래로 불러보니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이 핍진하게 다가온다. 전국의 선생님들께는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 옳겠다. 선생님이라는 숭고한 언어가 이렇게 유린됐다.

“최 선생님에게 컨펌 받았나요?” 박 대통령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보냈다는 이 문자메시지는 대한민국의 실질적 대통령이었던 것이 확실시되는 최순실씨가 딸의 지도교수에게 퍼부었던 막말을 자동재생 시킨다. “교수 같지도 않고 이런 뭐 같은 게 다 있어?”(에코 이펙트 필수) 학교 안 나오는 학생에게 제적 경고를 했다가 최 선생님에게 저런 험한 말을 들은 ‘진짜 선생님’은 지금 어떤 기분일지. 정 전 비서관은 스스로 녹음한 휴대폰 통화 파일 속에서 자신을 학생처럼 질책하는 최 선생님에게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선생님” 넙죽넙죽 대답도 잘했다고 한다.

국어사전이 정의하는 바, 선생님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학생 가르치기를 업으로 삼는 교육자가 1번, 성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르는 말이 2번, 남자 어른을 높여 부르는 말이 3번 뜻으로 풀이돼 있다. 이 중 최 선생님은 몇 번일까. 3번은 어이없는 성차별주의 덕분에 정답에서 탈락. 남은 두 개 중 박 대통령과 문고리들은 2번을 주장하고 싶겠지만, 국정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최 선생님이 보인 행태는 영락 없이 1번이다. ‘참 잘했어요’ 도장은 없어서 못 찍어줬을 것이다. 한국어에서 선생님은 간명하게 직업교사만을 일컫는 영어와 달리 참으로 다채롭게 남발되지만, 최 선생님은 최악의 오용 사례로 길이길이 남을 만하다.

군사부일체의 유교적 전통이 남긴 ‘선생님의 남용’은 누구나 동등하게 존중하는 호칭이 없다는 한국어의 빈곤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불러야 좋을지 모를 사람을 예를 갖춰 부를 때 선생님처럼 요긴한 언어도 없다. 한국어의 경어법 체계를 폐기하지 않는 한 막연한 예우의 언어로 선생님은 언제나 오롯할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존재를 규정한다. 언어가 그래서 권력이다. 지속적 관계망 속에서 누군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점점 토 달고 반대하기가 어려워진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대체로 선생님처럼 굴게 된다. 민원 담당 공무원 다음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많이 쓰는 직종일 문화부 기자로 일하면서,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걸 후회한 상대가 적지 않다. 한국어의 경어법과 그에 따라 배치되는 호칭들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상당히 가로막는다.

길라임은 용서할 수 있다. 드라마에 너무 빠져 있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동료 기자 중에는 식당 예약을 하며 우병우 같은 이름을 쓰는 괴짜가 있다. 식당 입구에서 “우병우씨 만나러 왔는데요”라고 말하려면 부끄러워 입이 잘 안 떨어지지만,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는 유쾌한 장난이다. 하지만 최 선생님은 심했다. 박 대통령이 최 선생님을 3인칭으로만 썼는지, 2인칭으로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몇 인칭이든 ‘최 원장’이나 ‘최 회장’보다야 편했을 것이다. 한 문제 풀 때마다 ‘이거 맞아요?’의 표정으로 선생님을 올려다보는 초등학생처럼, 건건이 국정을 컨펌 받기에 얼마나 혀에 딱 달라붙는 호칭인가.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치진 않은 최 선생님이 검찰 수사를 받다가 대통령은 하야를 했는지 물었다고 한다. 앞서는 “나 때문에 박 대통령이 하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선생님이 버티기를 컨펌하신 것이다. 5%의 지지율로 버티던 박 대통령이 엘시티 비리 엄정 수사를 ‘지시’하며 입이 쩍 벌어지는 역공을 펼치는 것을 보면, 국익을 위해 그런 컨펌은 보도하지 않았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이 든다. 최 선생님은 변호인에게 “저는 무기징역인가요” 묻기도 했다. 그게 그렇게 걱정된다면, 이제라도 최 선생님은 하야를 컨펌하라.

박선영 문화부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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