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선생님’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아아~ 고마워라, 최 선생님의 사랑.’ 최 선생님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 ‘아아아~ 보답하리~, 최 선생님의 은혜.’ 노래로 불러보니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이 핍진하게 다가온다. 전국의 선생님들께는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 옳겠다. 선생님이라는 숭고한 언어가 이렇게 유린됐다.
“최 선생님에게 컨펌 받았나요?” 박 대통령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보냈다는 이 문자메시지는 대한민국의 실질적 대통령이었던 것이 확실시되는 최순실씨가 딸의 지도교수에게 퍼부었던 막말을 자동재생 시킨다. “교수 같지도 않고 이런 뭐 같은 게 다 있어?”(에코 이펙트 필수) 학교 안 나오는 학생에게 제적 경고를 했다가 최 선생님에게 저런 험한 말을 들은 ‘진짜 선생님’은 지금 어떤 기분일지. 정 전 비서관은 스스로 녹음한 휴대폰 통화 파일 속에서 자신을 학생처럼 질책하는 최 선생님에게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선생님” 넙죽넙죽 대답도 잘했다고 한다.
국어사전이 정의하는 바, 선생님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학생 가르치기를 업으로 삼는 교육자가 1번, 성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르는 말이 2번, 남자 어른을 높여 부르는 말이 3번 뜻으로 풀이돼 있다. 이 중 최 선생님은 몇 번일까. 3번은 어이없는 성차별주의 덕분에 정답에서 탈락. 남은 두 개 중 박 대통령과 문고리들은 2번을 주장하고 싶겠지만, 국정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최 선생님이 보인 행태는 영락 없이 1번이다. ‘참 잘했어요’ 도장은 없어서 못 찍어줬을 것이다. 한국어에서 선생님은 간명하게 직업교사만을 일컫는 영어와 달리 참으로 다채롭게 남발되지만, 최 선생님은 최악의 오용 사례로 길이길이 남을 만하다.
군사부일체의 유교적 전통이 남긴 ‘선생님의 남용’은 누구나 동등하게 존중하는 호칭이 없다는 한국어의 빈곤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불러야 좋을지 모를 사람을 예를 갖춰 부를 때 선생님처럼 요긴한 언어도 없다. 한국어의 경어법 체계를 폐기하지 않는 한 막연한 예우의 언어로 선생님은 언제나 오롯할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존재를 규정한다. 언어가 그래서 권력이다. 지속적 관계망 속에서 누군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점점 토 달고 반대하기가 어려워진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대체로 선생님처럼 굴게 된다. 민원 담당 공무원 다음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많이 쓰는 직종일 문화부 기자로 일하면서,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걸 후회한 상대가 적지 않다. 한국어의 경어법과 그에 따라 배치되는 호칭들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상당히 가로막는다.
길라임은 용서할 수 있다. 드라마에 너무 빠져 있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동료 기자 중에는 식당 예약을 하며 우병우 같은 이름을 쓰는 괴짜가 있다. 식당 입구에서 “우병우씨 만나러 왔는데요”라고 말하려면 부끄러워 입이 잘 안 떨어지지만,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는 유쾌한 장난이다. 하지만 최 선생님은 심했다. 박 대통령이 최 선생님을 3인칭으로만 썼는지, 2인칭으로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몇 인칭이든 ‘최 원장’이나 ‘최 회장’보다야 편했을 것이다. 한 문제 풀 때마다 ‘이거 맞아요?’의 표정으로 선생님을 올려다보는 초등학생처럼, 건건이 국정을 컨펌 받기에 얼마나 혀에 딱 달라붙는 호칭인가.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치진 않은 최 선생님이 검찰 수사를 받다가 대통령은 하야를 했는지 물었다고 한다. 앞서는 “나 때문에 박 대통령이 하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선생님이 버티기를 컨펌하신 것이다. 5%의 지지율로 버티던 박 대통령이 엘시티 비리 엄정 수사를 ‘지시’하며 입이 쩍 벌어지는 역공을 펼치는 것을 보면, 국익을 위해 그런 컨펌은 보도하지 않았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이 든다. 최 선생님은 변호인에게 “저는 무기징역인가요” 묻기도 했다. 그게 그렇게 걱정된다면, 이제라도 최 선생님은 하야를 컨펌하라.
박선영 문화부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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