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직업ㆍ나이의 시민배우들
어설픈 시선처리ㆍ멋쩍은 동작에
연기 지적 거듭돼도 화기애애
市 “생활예술 체험 기회 확대할 것”
“꼬비엘, 대사는 잘하셨는데 시선이 너무 확 돌아갔어요. 뤼실은 화낼 때 발만 구르지 말고 끄레앙뜨 가슴을 때리는 게 좋겠고…”
14일 직장인들이 퇴근을 서두르던 무렵인 오후 7시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3층 종합연습실. 연극 ‘서민귀족’ 연습 중 연출자 강신구(47)씨의 연기 지적이 거듭돼도 연습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연출자는 권위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친절한 말투로 설명하고 무대에 선 이들은 배우라기엔 움직임이 어쩐지 멋쩍다.
19, 20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될 연극 ‘서민귀족’과 ‘서울사람들’을 준비하는 이들은 전문 배우가 아닌 시민 배우다. 7월부터 서울시 산하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의 ‘시민연극교실’에 참여해 왔다. 월요일반, 금요일반 2개 반 각각 15명씩 구성돼 연극의 기본을 배우고 직접 공연을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이다. 금요일반은 몰리에르의 희곡 ‘서민귀족’을, 월요일반은 닐 사이먼의 희곡 ‘굿닥터’를 각색한 ‘서울사람들’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다.
지난 5개월 간 매주 한 차례씩 바쁜 시간 쪼개 퇴근 후 연습실에서 배우의 새 일과를 경험해 온 이들은 회사원, 교사, 변호사, 주부, 취업준비생, 시인 등으로 면면도 다양하다. 연기는 어설퍼도 쳇바퀴 같은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 열정만은 전문 배우 못지 않다. 외국계반도체 회사에서 25년 간 근무하고 은퇴한 손선미(52)씨는 “일상에 지쳐 삶의 전환이 필요했다”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그는 “나이를 초월해 공연예술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얻게 된 것도 큰 수확”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디자이너 남슬기(26)씨는 “내성적이어서 감정 표현을 자유자재로 하는 법을 터득하고 싶었다”며 “연극을 시작한 이후 표현이 확실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이들 지도를 맡은 서울시극단 배우들도 배운 게 많다. 2005년 ‘서민귀족’에 출연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공연 총연출을 맡은 이창직(55)씨는 “출연진 연기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로서 초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시민연극교실은 2009년 시작해 이번이 8기째다. 그간 거쳐 간 인원이 200명이 넘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창단한 극단도 5개나 된다.
최근에는 서울시극단 외에 민간 극단이나 서울시 자치구에서도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아예 이 같은 생활예술 확대를 목표로 ‘생활문화도시, 서울’ 기본계획을 지난달 발표하기도 했다. 2020년까지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생활문화지원센터 90곳을 열고 이들을 지도할 ‘문화예술매개자’ 1,000여명을 육성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날 만난 시민연극교실 참가자들도 “생활예술 체험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보탰다. 서대연(28)씨는 “아마추어가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서게 된 것도 기쁘지만 무엇보다 전문 배우들에게 연기를 배운 게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기분 좋은 스트레스와 함께 내가 바뀌어 가는 걸 느끼는 게 무척 즐겁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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