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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샤머니즘 외교에 정통성 없다

입력
2016.11.1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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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사고와 민주주의가 당연시되는 오늘날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아주 옛날에는 정치와 종교가 한 몸이거나 경계가 불분명했다. 정치권력을 갖는 족장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이 같은 사람이거나 제사장이 위에서 군림해 부족의 생사를 다투는 중대 결정을 점괘나 점성술로 정하곤 했다. 자연환경의 위력에 압도당한 인간은 하늘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다지 합리적이지도, 거의 민주주의적이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의 외교에도 이러한 기괴한 운명론적 냄새가 난다.

요즘 소문대로 ‘우주의 기운’이 정말 작용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박 정부는 지난 2월 돌연 개성공단을 전면 폐쇄했다. 북한 핵실험, 천안함 사태, 남남갈등 등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남북협력의 마지막 보루로서 버텨온 개성공단을 일거에 문 닫아버리다니, 국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주무장관인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공단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조차 답하지 못해 혼쭐났다. 뭐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혼’이 이런 엄청난 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러더니 그동안 떠다니던 ‘통일 대박’이라는 해괴한 풍선도 어느덧 거품 꺼지듯이 사라졌다. 하지만 곧 무너진다던, 아니 무너뜨리고야 말겠다던 김정은 정권은 멀쩡한데 박 정권이 먼저 사라질 지경이 됐다.

박 대통령은 당초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 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역사문제에 대해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지난해 말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불가역’이라는 대못을 박으면서까지 일본과 손을 잡아버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최선을 다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정말 중요한 피해당사자는 물론이고 대부분 국민은 납득하지 못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번에는 적반하장격으로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혼’을 불어넣었다. ‘혼’과 역사 중에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린 국민은 혼비백산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중국의 대일 전쟁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베이징의 천안문 망루에 섰다. 미국을 불편해할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가 돈독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우주의 기운’에 뭔가 중대한 변전이 있었는지, 한 달 후인 10월에는 미국을 찾아가 중국에 북핵 문제에 관한 책임을 따지더니, 돌연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군사적으로도 설득력이 약하다는 사드를 왜 배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명은 충분하지 못했다. 미ㆍ중 초강대국의 세력 다툼에 끼인 한국은 구한말의 대한제국처럼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위태위태한 외줄 타기를 하게 됐다.

외교는 국내정치의 거울이다. 국내정치만 쳐다보며 국제관계에 해당하는 외교를 해서도 곤란하지만, 국민과 함께하지 않는 외교는 설 땅이 없다. 국론의 뒷받침을 받지 않는 외교는 국익 추구는커녕 자칫 국민 배반 행위가 된다. 취임 초기 한때 각광받았던 박근혜 외교는 이후 뭔가에 씐 듯이 변덕을 부리더니 국론을 무시하며 마구 질주해왔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알 수가 없다. 외교나 국방 관료들은 으레 근엄하게 박 대통령의 혼이 실린 ‘말씀’을 받아 적었지만,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를 어쩌나. 상대국이 있기 때문에 일관성과 대의명분으로 죽고 사는 외교는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국론과 국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외교였다면 비록 갈 길이 험난하고 혼란스럽더라도 고쳐나가는 것이 옳다. 민주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못한 샤머니즘적 외교에는 원래 정통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불나방처럼 서둘러 가서명하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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