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에게 동기 부여가 실제 경기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이를 잘 알려주는 사례가 있다.
2007년 세르지오 파리아스(49)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프로축구 포항은 정규시즌을 5위로 마친 뒤 6강 플레이오프(PO)와 준PO, PO, 챔피언결정전에서 파죽지세로 승리하며 리그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파리아스 감독이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거론될 정도로 ‘파리아스 매직’이 화제를 모았다. 포항은 리그 정상에 서고 2주 뒤 전남과 FA컵 결승 1ㆍ2차전을 치렀다.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포항의 우세를 점쳤다. 그만큼 포항은 강했고 짜임새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전남이 1ㆍ2차전을 모두 이기며 우승했다. 포항의 가장 큰 패인은 이미 한 개의 우승컵을 품었다는 안일한 마음이었다.
올해 FC서울이 비슷하다.
서울은 지난 6일 전북 현대를 극적으로 제치고 정규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오는 27일(수원)과 다음 달 3일(서울), 라이벌 수원 삼성과 FA컵 결승 1ㆍ2차전에서 격돌한다.
황선홍(48) 서울 감독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14일 구리 클럽하우스에 본보와 만난 그는 “우리 선수들이 현명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나도 감독으로 최선을 다해 FA컵을 준비하겠지만 어찌 보면 이미 감독 손을 떠난 경기나 다름 없다. 우리 선수들이 똑똑하다면 분명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다”고 힘줘 말했다. 선수들이 나태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잘 해낼 거라는 기대감이 동시에 묻어났다.
사실 황 감독은 포항 사령탑이던 2013년 프로축구 최초로 더블(정규리그ㆍFA컵 2관왕)을 달성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순서가 반대였다. FA컵 우승 후 정규리그 최종전을 소화하는 일정이었다. 황 감독도 “2013년은 두 개 대회 다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지금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FA컵 결승 2차전은 서울 홈이다. 결과가 안 좋으면 안방에서 남의 잔치를 열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황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을 눈앞에서 놓친 전북 선수들이 허탈해하는 사진을 우리 선수들에게 보여줄 생각이다. 승부에 2등은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은 15일 제주도로 떠나 22일까지 이곳에서 컨디션을 끌어올린다.
이제 맞서는 수원은 따로 정신 무장을 주문할 필요가 없다.
수원은 서울과 반대로 9년 전 전남과 판박이다. 당시 정규리그 10위에 그친 전남은 FA컵 결승에 ‘올인’할 수 밖에 없었고 열세라는 평을 뒤집고 우승했다. 수원 역시 올 시즌 리그 7위로 자존심을 구겼다. 창단 이후 처음으로 하위그룹(7~12위)으로 떨어져 강등 싸움을 벌이는 수모를 겪었다. 서정원(47) 수원 감독은 지난 5일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마치자마자 “FA컵 우승으로 상처 받은 팬들의 마음을 달래고 싶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서 감독은 2012년 말 수원 지휘봉을 잡은 뒤 정규리그 준우승(2014ㆍ2015)만 두 번이다. 수원이 정상을 경험한 건 2010년 FA컵 우승이 마지막이었다. 벌써 6년 전이다. 수원은 FA컵 결승에 대비해 강도 높은 담금질에 들어갔다. 14일 남해로 내려가 19일까지 훈련한다.
서울과 수원, 두 팀의 올 시즌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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