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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교과서 ‘남북국시대 표현’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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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교과서 ‘남북국시대 표현’ 딜레마

입력
2016.11.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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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동북공정 대응 발해 강조되며

통일신라 대신 남북국시대 대세

北역사학계 표현 따르게 돼

수정본서 통일신라로 고친 듯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국감서 “남북국 목차 봤다” 주장

국정 역사교과서의 고대사 핵심쟁점인 7~9세기 신라 발해 융성기가 ‘통일신라시대’라고 서술될 것으로 보인다. 발해를 한국사 안에 끌어들여 ‘동북공정’(중국의 고대사 왜곡)에 적극 대응한다는 정부의 당초 집필 방향과 어긋나는 결정이다. 신라 위주 서술에서 벗어나 ‘남북국시대’라 부르는 최근 역사학계의 흐름과도 배치된다.

‘남북국 시대’, 수정본서 빠졌나

해당 사안은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9월 말 국회 국정감사에서 “통일신라시대를 남북국시대로 표현한 국정 역사교과서의 목차를 봤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됐다. 이 원장이 말한 교과서 열람 시기는 6월쯤으로, 초고본이나 원고본이 집필되던 때다. 이 원장은 “통일신라시대를 남북국시대로 쓰게 되면 1948년 이후 현재 상황은 제2의 남북국시대가 되고 북한 정권을 인정하는 격”이라며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15일 교육부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사실이 아니다, 그렇게(남북국시대) 단정하면 틀릴 가능성이 크다”고 부인했다. “(남북국시대는) 북한 쪽에서 쓰는 표현”이라고도 했다. 이로 미뤄볼 때 남북국시대라는 표현이 초고에 들어갔다가 이 원장의 지적 이후 수정본(개고본)에선 빠졌을 공산이 크다. 게다가 이번 교과서 대표 집필자인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대표적인 신라사 전공자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우리, 즉 남한에서 번성한 신라가 역사의 중심이라는 원로 학자들의 국수주의적 관점이 결과적으로 반영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점차 발해가 강조되는 요즘 역사학계의 분위기와는 다른 결정이다. 실제 중국이 발해를 자국 역사에 포섭하려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발해를 통일신라와 동등하게 보려는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신라와 발해의 공존 시기를 통일신라시대라고 주장하는 신라중심 사관의 뿌리가 중화주의에 물든 김부식이 작성한 ‘삼국사기’에서 비롯된 데다, 한국사의 영역을 한반도에 국한하려는 일제의 식민주의 사관도 이를 악용했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서영수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발해사 연구 성과를 포용하는 한편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현재 3개 시기(상대 중대 하대)로 나뉜 통일신라를 합쳐 단순화한 표현이 남북국시대”라고 말했다.

현대사의 서술 기조인 남한 정통성 강조가 고대사 해석에 지나치게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별개로 균형을 명분으로 일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여러 설을 열거하는 서술 방식 역시 논란거리다. 이런 역사교과서의 기계적 중립은 영국과 일본의 보수세력이 집권기에 써먹었던 방식이다.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친일과 독재를 적극 미화하는 대신 여러 설을 설명하는 방식을 쓰면 객관적 지식처럼 보이게 돼 반감이 완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1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역사학자들이 전국 102개 대학 역사학과 역사교육과 교수 561명 명의로 국정교과서 폐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역사학자들이 전국 102개 대학 역사학과 역사교육과 교수 561명 명의로 국정교과서 폐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잘된 국정화’는 모순된 표현”

학계ㆍ시민사회는 공개가 임박한 국정 교과서 내용을 비판하기보다 정부의 국정화 정책 자체의 철회를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전국 102개 대학 역사학과 역사교육과 교수 561명은 15일 서울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발표된 공동 성명을 통해 “28일로 계획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를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교수들은 정부가 국정화를 폐기하지 않으면 “역사교사ㆍ시민들과 더불어 국정교과서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한상권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 대표(덕성여대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역사를 국가가 장악하려 해선 안 된다”며 “‘잘된 국정화’란 말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했다.

야3당은 국정화 폐기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16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정화 금지 법안들을 상정한다. 도종환 민주당 의원(야당 간사)과 같은 당 김종인 대표, 우상호 원내대표 등 39명이 공동 발의한 ‘역사교과용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안’ 등 8개 법안이 현재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가장 강한 규제 법안으로 평가되는 도 의원 법안은 역사교과서는 국정 발행을 금지하고, 정부의 교과서 검인정 기준을 심의할 민간위원회를 만드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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