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러 왔습니다”
지난 4일 오전 11시쯤 부산 동구 경남여고에 한 50대 여성이 대학생 딸과 함께 찾아왔다.
학교 발전기금을 내고 싶다는 이 여성은 군데군데 테이프가 붙어 동그랗게 말린 빛바랜 종이 한 장을 꺼내놓았다. 이 학교 28회 졸업생인 이정자씨의 졸업장이었다.
여성은 “3개월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최근 유품을 정리하다 고이 간직해놓으신 졸업장을 발견했다”며 “생전에 모교 사랑이 남다르셨던 것 같아 어머니 유산을 기부하려고 서울에서 왔다”고 말했다.
여성은 학교발전기금 기탁서에 학생 체육 활동에 지원해달라는 의사 표시를 한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 기탁서 기부자ㆍ기부금 난에는 어머니 이름인 이정자씨 명의로 1억원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교장까지 나서 이름이라도 알려달라고 했지만, 여성은 딸을 데리고 별말 없이 학교를 떠났다. 나흘 뒤인 8일 학교발전기금 계좌에는 약속대로 1억원의 돈이 송금됐다.
학교 측은 기부자 이름을 근거로 오래된 생활기록부를 뒤져보니 이 여성의 어머니인 이정자씨는 1953년에 경남여고에 입학, 졸업 후 이화여대 사범대학 교육과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재봉 경남여고 교장은 “고인의 훌륭한 교육관이 따님과 손녀에게 그대로 전해진 것 같다”며 “별다른 유언이 없는데도 어머니 유산을 기부해주신 뜻이 정말 고맙고, 학생들에게 알려 귀감으로 삼고 기부금은 목적에 맞게 잘 사용하겠다”라고 말했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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