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공포, 콜롬비아 병원에서 겪은 일 에서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맹장수술 후 가장 큰 충격은 웃음이 곧 고통이란 점이었다. 기쁠 일도 많지 않건만, 복부 근육이 가격당해 웃음조차 도둑맞았다. 여행 중인데, 난 숙소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아침 먹고 눕고, TV를 켜고, 지루한 드라마가 끝날 때쯤 점심이 다가왔다. 배는 제주 오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노트북을 배 위에 둘 수 없으니, 뭔가를 쓸 수도 없었다. 그나마 휴대폰 검색이 가장 친한 친구였다. 맹장 수술과 관련된 국내외 글은 몽땅 읽었다. 소모임 후기까지 탈탈 털었다. 괴기한 수술 후유증 후기는 읽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나의 처지와 한국인의 후기(괄호 안)를 비교할수록 ‘수술 후 2차 염증이 생기면’이란 몹쓸 가정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소독액은커녕 녹슨 샤워기에서 나오는 수돗물과 비누로 씻는 게 맞을까?(물도 튀기지 말라고 했다), 파스타 죽을 만들어 먹어도 되는 걸까?(밀가루 음식을 먹지 말란 제한이 있다), 수술 부위 주변이 발갛게 변했는데 괜찮은 걸까?(그 주변에 발적이 있으면 무조건 병원에 가라고 했다), 실밥을 뽑을 때 수술비를 더 받을까? 병원과 숙소를 왕복하면 택시비가 더 나올 텐데.(콜롬비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미국에선 구급차에 실려 가도 1,000만원이 든다고 했다)
악몽까지 꿨다. 몸이 아니라 정작 마음의 병을 얻은 셈이었다. 요양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여행 중에 일어난 문제는 여행이 답을 주는 법. 콜롬비아의 북부인 민카(Minca)로 향했다. 수술 후 20여 일이 지난 뒤였다.



민카로 가는 길은 대도시인 산타 마르타에서 콜렉티보(4명이 채워지면 출발하는 합승 택시)로 통한다. 합석이 싫다면 4인용 금액을 지불하고 타면 된다. 오매불망 다른 승객을 기다리는데, 거리를 밝힐 만큼 새하얀 얼굴과 성냥개비 몸매를 소유한 여자가 다가왔다. 뒤에는 그와 정반대의 검고 건장한 남자가 있었다. 곧바로 차는 출발했다.
“저기 말이지. 네가 좀 뿌리다에게 말해줘. 의사라며. 수술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말이지.”
“어머, 맹장 수술을 했다고? 어디에서?”
“카리브 대학병원에서.”
가뜩이나 하얀 여의사가 더 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이름 아네뜨. 독일에서 파견 나와 레지던트로 근무했던 곳이라 했다. 2년간 단 한 명의 외국인도 보지 못했던 병원. 아마도 내가 동양인 최초, 아니 외국인 최초일지도 모른다며 병원 역사에 기록될 일 인양 법석이었다. 느림에 대한 답도 들었다. 콜롬비아 현지인 중에서도 최저소득층의 환자와 더불어 (목격한 바대로) 강도 높은 응급환자가 물밀 듯 들어오는 병원이라 했다. 몽롱했던 응급실 살이 당시, 날 진단한 외과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자정이 지나면, 이곳은 지옥으로 변할 거야.”


민카는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해발 660m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에 작은 마을이 걸려 있다. 콜롬비아로선 산 취급도 못 받을 정도로 생경하게 낮다. 숨을 크게 쉬는 거인의 허파와 닮은꼴이다. 모두들 불쾌하다고 입을 모으는 대도시 산타 마르타(Santa Marta)를 벗어나는 최상의 옵션으로 손꼽힌다. 당시 난 면역력이 약해져 카르타헤나와 산타 마르타의 카리브 해 태양 때문에 발병한 햇빛 알레르기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노출된 부위엔 어김없이 좁쌀만한 물집이 올라왔다. 민카는 어딜 가나 브로콜리 숲이다. 이곳의 유명한 오가닉 커피를 맛보기보다 태양을 피하고 싶었다. 작고 숨기에 좋은 마을이 애꿎은 향수(鄕愁)를 자극했다.



민카에서의 가장 큰 일은 걷는 것이다. 트레일은 긴 타원형으로 된 둘레길이다. 5~6시간이면 한 바퀴를 돈다. 시계 방향이든 반시계 방향이든 선택은 마음대로다. 콜렉티보가 선 마을 중심에서 직진해 포조 아줄(Pozo Azul)에서 수영할 기회가 있지만, 계곡에서 물장구치는 수준이다. 그보단 숲 속 트레킹이 핵심이다.
전방위로 서로 겨루듯 자란 나무가 무성하다. 고개를 젖히고 봐도 이파리가 앞으로 향하는지 옆으로 향하는지 구분이 안 간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지만, 민카의 자연은 좀 달랐다. 얌전하게, 스리슬쩍 저며오지 않고 야단법석을 친다. 숲은 침묵하나 거칠게 위로한다. 이렇다 할 하이라이트가 없는 이유는 언제나 하이라이트인 까닭이다. 콜롬비아는 세계에서도 새의 메카로 유명한 나라다. 이곳 시에라 네바다에선 162여 종이 발견된다고 알려졌다. 펼 때마다 반전인 나비의 날갯짓, 심심하면 들리는 새소리의 파동, 손톱보다 작은 야생화의 몸짓 등 아름다운 것들이 자주 눈에 걸렸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정상이 지척인 엘 캄바노(El Campano)에서다. 소나기인 줄 알았더니 먹구름을 거둬갈 바람 한 점 없었다. 지도를 보니 코스의 반도 못 돌았다. 이미 볼썽사나운 생쥐 꼴이었는데, 기분은 황제 같았다. 일부러 고개를 들어 아픈 비를 맞았다. 애초에 무리하게 시작한 트레킹이었다. 이 비가 쉬어가라 채근하는 것 같았다. 현지인 차에 실려 산 수시(San Souci) 숙소로 돌아갔다. 산 수시는 ‘어떤 문제도 없이’란 뜻이다. 나의 급한 마음도 제 속도로 돌아오고 있었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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