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추미애 더불어 민주당 대표가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회담하기로 했다가 취소했다.
추 대표가 먼저 제안하고 청와대가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일정이 잡힌 회담이었다. 당내 반발을 이유로 뒤늦게 이를 취소한 추 대표의 무책임성이 두드러졌다. 한편으로 최순실 사태로 분노와 낙담에 젖은 국민에게 제1야당조차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 정치현실을 새삼스럽게 일깨웠다. 국정 공백의 조기 해소 전망도 더욱더 흐려졌다.
추 대표는 14일 “모든 것을 열어 놓고 허심 탄회하게 민심을 전하면서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갖고자 한다”며 박 대통령과의 1대1 회담을 제안했다. 당연히 당내 소통을 거친 제안일 것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는 전혀 달랐다. 12일의 촛불 집회에서 100만명이 “퇴진, 하야”를 외쳤지만 마땅한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하던 마당에 제1야당 대표가 민심을 전하고 정국 해법을 논의하겠다니 맨발로 뛰어나와 반길 만했다.
그러나 급작스레 마련된 회담을 두고 적잖은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됐다. 우선은 민주당 내부의 반발이 예상 범위를 넘었다. 민주당은 그동안 박 대통령의 ‘2선 퇴진’을 요구해 오다가 12일 광화문 촛불 집회 이후 하야 내지 탄핵으로 막 당론을 바꾼 직후였다. 논리적으로 박 대통령의 결단을 압박하며 기다리다가 끝내 박 대통령이 아무런 결단을 않을 경우 탄핵 추진에 당력을 집중해야 마땅했었기 때문에 돌발적 회담 제안과 성사를 두고 당내 반발이 들끓었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더욱이 야당의 또 다른 축인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비판도 날카로웠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금은 야권 공조의 균열이 가서는 안 되는 때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며 “대단히 유감스럽고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야당의 비판을 그저 소수 야당이 주요 정치행사에서 소외된 데 대한 반발 정도로 치부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거취가 대단히 유동적인 상황이다. 검찰이 박 대통령의 조사와 다음 주 초로 예정된 최순실 씨 국정농단 사건 기소 등은 19일 촛불 집회에서 더욱 분명해질 민심의 향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박 대통령의 사건 개입이나 방조 정도에 따라 민심이 크게 소용돌이 칠 수 있는 결정적 국면을 앞두고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회담이 사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는 얼마든지 타당성을 가질 만 했다. 나아가 박 대통령과 추 대표가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거나 도저히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만 주고 받는 수준에서 대화를 마친다면 안 한 것만 못한 회담일수도 있었다. 국민은 얼굴만 붉히는 청와대 회동을 여러 차례 봐 왔다.
야권의 이런 시각과 달리 정치 관측통들 사이에서는 박 대통령의 의중 확인 등 일정한 회담 성과를 점치며 정국 해법의 실마리라도 찾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광화문 3차 촛불집회 다음날 청와대는 “상황의 엄중함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으나, 박 대통령 나름의 정국 수습 방안의 표명이나 국민과 언론이 요구해온 결단은 아직 털끝도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만에 하나 두 사람이 새로운 정국 수습 방안에 원칙적으로라도 합의하거나 최소한 의견 접근의 실마리라도 찾는다면 그 또한 반길만했다.
이런 일말의 기대에 비해 회담에 대한 우려와 의심이 너무 컸다. 그 결과 정치 해프닝이 잠시 나라를 흔들었다. 주된 책임은 추 대표가 져야 마땅하다. 정치를 장난으로 아는 게 아니라면 어찌 이런 사고를 칠 수 있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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