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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활용 난맥상은 최순실 탓” 서글픈 평창

입력
2016.11.1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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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강릉시 일대에 건설중인 2018 평창동계올림픽 빙상경기 시설들. 강릉시 제공
강원 강릉시 일대에 건설중인 2018 평창동계올림픽 빙상경기 시설들. 강릉시 제공

“개폐회식장과 강릉 빙상경기장, 그리고 슬라이딩센터.”

강원도내 지방자치단체의 평창동계올림픽 사후활용 담당자 2명과 지역의 교수 3명 등 5명은 가장 사후활용이 우려되는 올림픽 시설을 묻자 이 세 곳을 나란히 꼽았다. 이 가운데 슬라이딩센터는 대회 시설 및 엘리트 선수들의 훈련시설로의 목적성이 분명해 알펜시아 스키점핑센터처럼 어느 정도 적자를 감안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데는 많은 공감이 있었지만, 평창군 개폐회식장과 강릉시의 빙상 경기장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컸다.

문체부의 올림픽, 그리고 의문의 설계변경

지자체 관계자와 교수들은 물론 시민들마저도 이 두 시설에 대해 언급할 때 ‘의문’이란 단어를 자주 곁들였다. 강원도 관계자는 “개최확정 초기까지만 해도 비용 절감을 위해 강릉 종합운동장 리모델링 또는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 활용 등이 우선적으로 검토됐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추가로 건물을 짓지 않기로 했던 계획은 어느 순간 뒤집어졌고, 개폐회식장을 새로 짓는 데 1,226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 등 단 네 번의 행사를 위한 비용 치고는 지나치게 큰 데다, 뚜렷한 사후활용 계획도 없었던 상태라 ‘의문의 계획변경’이란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릴 예정인 강원 평창군 횡계리의 올림픽플라자 공사현장. 김형준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릴 예정인 강원 평창군 횡계리의 올림픽플라자 공사현장. 김형준 기자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월 기존 사각형 스타디움 형태였던 기본설계안이 오각형 구조로 변경됐고, 공사 수주 과정에서 현 정권 ‘비선 실세’ 최순실(60·구속)씨 회사인 더블루K와 손잡은 스위스 건설회사 누슬리 밀어주기 정황이 드러나면서 개폐회식장을 둘러싼 논란은 더 커졌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올림픽 이후 적자를 보전해야 할 곳도, 사용할 곳도 지자체인데 모든 결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입김이 너무 셌다. 특히 2014년 강원도지사 출신의 김진선 전 조직위원장이 갑자기 물러난 뒤부턴 거의 ‘문체부의 올림픽’이 됐다”고 전했다. 평창 거주 시민들도 불만이다. 개폐회식장 인근에 사는 이모(65)씨는 “개폐회식장이 오각형 구조로 지어진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대관령면 인구도 적은데 저렇게 지어 놓으면 공연행사는커녕 조기축구도 못할 게 뻔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존치 결정은 내가, 관리비용은 네가

경기 시설 사후활용과 관련한 문체부의 ‘일방통행’사례는 강릉에서도 있었다. 강원도에 따르면 개최 확정 초반 도와 강릉시는 강릉 빙상장을 대회 후에도 남겨 활용하길 원했으나 문체부는 2014년 5월 강원도에 공사입찰 중단 및 재설계(철거) 방침을 통보했다. 이 같은 결정에 따라 도는 그 해 10월부터 임시시설로 설계해 착공에 들어갔지만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 5월 문체부는 돌연 강릉빙상장의 영구존치 결정을 내렸다. JTBC에 따르면 김종 전 차관은 강릉 빙상장 활용 계획을 바꾸도록 앞장선 사실을 인정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때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릴 강릉빙상장.
평창동계올림픽 때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릴 강릉빙상장.

하지만 존치 결정이 문체부 주도로 이뤄졌음에도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이 사후활용 관련 비용에 대해 “국고 지원은 절대 없다”고 못을 박으며 ‘지자체 길들이기’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강원도와 강릉시청 관계자는 모두 김 전 차관의 ‘지원 불가설’을 인정했다. 강릉시 관계자는 “자칫 재미는 강원도가 보고 정부에 손 벌린다는 여론이 일 수도 있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지 못한 건 사실”이라며 “다만 (김종 전 차관을 제외한)문체부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국가대표 훈련장 등으로 사용될 예정인 만큼 어느 정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에는 강릉빙상장 존치 결정이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37)씨 이권과 연관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지자체들은 큰 허탈감에 빠졌다. 강릉시의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까지 문체부에서 강릉시를 ‘스포츠시티’로 지정한다고 해 많은 기대를 걸었는데 이마저도 최순실 게이트와 연결돼 있다는 소식이 있어 모두가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순실 게이트, 지금이라도 터진 게 다행”

이처럼 평창동계올림픽 시설 사후활용 관련 난맥상의 원인들이 밝혀지면서 지자체와 대회 관계자들은 순수성 훼손으로 인해 관심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강원도 관계자는 “부정적 이슈가 커져 꼭 필요한 지원마저 줄고 흥행저하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강릉시 관계자도 “빙상장 등 시설 사후활용 계획이 도시 브랜딩 계획과도 연관돼 있어 고민이 크다”며 “계획 수정이 불가피한 상태”라고 밝혔다.

강원 강릉시의 녹색도시 체험센터 내에 설치된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체험관.
강원 강릉시의 녹색도시 체험센터 내에 설치된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체험관.

한편에선 지금이라도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박진경 관동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는 “이번 일로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투자 및 스포츠산업 투자에 대한 위축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면서도 “이번 기회에 잘못 편성된 예산들을 바로잡아 꼭 필요한 곳에 적절히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훈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올림픽 유산 관리를 위한 전문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사후활용이 미숙하거나 졸속으로 이뤄질 경우 지자체는 큰 적자를 떠안게 될 것”이라며 “K스포츠재단에 모아진 기금들을 올림픽 사후활용 기금으로 돌려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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