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까지 680만4,663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은 흥행작 ‘럭키’와 16일 개봉하는 강동원 주연의 화제작 ‘가려진 시간’은 공통점을 지녔다. ‘럭키’의 이계벽 감독과 ‘가려진 시간’의 엄태화 감독은 영화계 ‘스승’이 같다. 지난 6월 개봉한 손예진 주연의 스릴러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도 같은 문하생이다.
세 감독은 박찬욱 감독 영화들의 주요 스태프로 일하며 영화를 배웠다. 이계벽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2002)의 연출부원, ‘올드보이’(2003)의 조연출로 각각 활동하다 ‘야수와 미녀’(2005)로 감독 데뷔식을 치렀다. ‘친절한 금자씨’(2005) 스크립터였던 이경미 감독은 ‘미쓰 홍당무’(2008)로 감독이 됐고, 엄 감독은 ‘쓰리, 몬스터’(2004)의 조연출, ‘친절한 금자씨’의 연출부원, 단편영화 ‘파란만장’의 조연출 등을 거친 뒤 독립영화 ‘잉투기’(2013)로 데뷔했다.
한 감독의 ‘제자’들이 같은 해에 잇달아 영화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으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박 감독도 ‘박쥐’(2009) 이후 7년 만에 충무로에서 만든 ‘아가씨’로 428만7,839명을 모았다. 올해는 ‘박찬욱 사단’의 해라는 말이 과하게 들리지 않는다. 지난해 ‘베테랑’으로 1,200만 관객을 모은 류승완 감독도 박 감독 연출부 출신이다.
박 감독의 제자들에 대한 애정도 뜨겁다. 박 감독은 지난 4일 ‘가려진 시간’의 특별상영회에 참석해 엄 감독과 함께 공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는 “살인 사건이 나오지 않는 영화는 잘 보지 않는데 살인 사건 안 나오면서 이렇게 재미있게 본 영화는 없는 것 같다”며 제자 작품에 힘을 실어줬다.
도제 시스템이 강했던 충무로에선 유명 감독 밑에서 일을 배운 뒤 감독이 되는 게 통과의례였다. 하지만 대학 등의 영화 교육 과정이 체계화되고 독립영화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뒤 상업영화로 진출하는 경우가 늘면서 감독-조감독으로 대변되던 영화계 ‘사제관계’는 많이 약해졌다. ‘박찬욱 사단’의 활약이 더 눈에 띄는 이유다. 한 영화사 대표는 “박 감독 연출부 출신들은 교류가 잦아 일종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며 “서로 시나리오를 봐주고 의견을 교환하며 연출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박 감독은 예술적 상업영화, 상업적 예술영화를 만들며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며 “그런 독특한 경향이 제자들에게 현장에서의 특정한 가르침보다 더 큰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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