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보단 느낌 자극 ‘밈’ 제작
인터넷 상 트럼프 열풍 선도
“인종주의도 방조했다”
페이스북 비판 봇물처럼

기성매체의 대부분을 적으로 돌린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의 매체 전문가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SNS)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있다. 한때 시민들의 연결고리로 각광받았던 SNS는 2016년 대선에서 갈등을 유발하고 거짓 주장을 유포하는 공간으로 지목되고 있다. 트럼프가 SNS의 인종주의 바람을 타고 표를 결집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8일 대선결과가 나온 직후부터 페이스북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심사숙고하는 내부 회의를 진행 중이다. 마크 저커버그 CEO는 “페이스북은 IT기업이지 언론매체가 아니다”며 대선 기간 내내 “특정 정파를 지원한다는 것은 과격한 주장”이라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열중했지만, 내부에서조차 페이스북이 정치 공론장의 역할을 외면하고 가짜 뉴스 유포와 인종주의의 확산을 사실상 방조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 대선 직전인 10월 5일 페이스북에는 ‘덴버 가디언’이라는 가짜 뉴스사이트가 등장, “연방수사국(FBI) 직원이 힐러리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과 관련해 진실을 숨기려는 압력을 받다가 부인을 총으로 쏘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뉴스를 퍼트렸다. 자이네프 투페키 노스캐롤라이나대 부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를 정식으로 지지했다는 가짜 뉴스가 100만번 공유된 반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기사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며 “페이스북이 이번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페이스북은 뉴스 제공 매체로서 대선 내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5월에는 공화당과 보수진영 쪽에서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실시간 뉴스 서비스 ‘트렌딩 토픽’이 의도적으로 민주당과 클린턴에 유리한 편집을 했다는 비판을 가했다. 이에 페이스북은 ‘인위적인 트렌딩 토픽 편집을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8월에는 ‘폭스뉴스가 배신자 메긴 켈리를 해고했다’는 거짓 뉴스를 띄우면서 “가짜 뉴스를 판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SNS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타임라인(SNS 이용자가 보는 화면)을 제공하기 때문에 분열을 심화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USA투데이는 여러 전문가를 인용해 SNS가 이용자와 비슷한 입장을 지닌 사람이 많이 인용한 게시물을 편집해 보여준다며 특정 지지층의 결집과 원자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계적으로 유사 메시지를 반복하는 가짜 계정, 이른바 봇(bot)도 문제다. 옥스포드대 연구에 따르면 첫 대선 토론 때 트럼프를 지지한 트윗의 3분의 1, 클린턴을 지지한 트윗의 5분의 1은 사람이 아니라 봇이 게시한 자동 트윗이었다. 문제는 이런 봇들이 SNS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메시지를 증폭한다는 것이다.
레딧과 트위터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알트라이트(alt-rightㆍ신우파)’는 이를 이용해 정보나 논리보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느낌’을 유발하는 밈(memeㆍ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글, 이미지 등)을 제작해 유행시키고 인터넷 상에서 ‘트럼프 열풍’을 선도했다. 트럼프 본인도 수시로 트위터를 이용하며 TV토론 때마다 “기성매체가 주목하지 않는 자신의 인기”를 과시했고 결국 백악관에 입성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캠프가 2008년과 2012년 존 매케인과 밋 롬니 후보를 SNS에서 압도하며 승리했지만 2016년에는 클린턴이 트럼프와 그 지지층의 화려한 SNS 활동에 밀렸다는 점도 패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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