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첫 인사에서 유연성을 발휘하며 공화당 주류에 화해 손짓을 보냈다. 내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하면 그를 최측근에서 보좌할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에 당초 거론됐던 강경 보수성향 인물 대신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추천한 라인스 프리버스(44)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을 기용하면서다.
트럼프 당선인은 13일 성명을 통해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에 프리버스 위원장을 낙점했다고 밝혔다. 막판까지 경쟁했던 인물은 당선인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35)와 강경 보수성향의 스티브 배넌(62)이다. 보수 우익성향 인터넷매체 브레이트바트 뉴스의 공동창업자인 배넌은 지난 8월 당선인이 무슬림 미군 장교 부모를 모욕하는 바람에 지지율이 급락했을 때 선거 캠프에 영입돼 위기극복에 앞장선 인물이다. 배넌은 수석전략가 겸 수석 고문으로 임명됐다.
트럼프 당선인이 프리버스 카드를 선택한 배경에는 배넌보다 합리적이고 온건 성향이라는 점도 고려됐겠지만, 향후 정국 구상을 위한 복합적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주류가 선호하는 인물을 선택해 국정 운영에서 적극적인 입법 지원을 얻어내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또 합리적인 인물을 비서실장으로 선택, 트럼프 당선인의 국정운영이 급진적이거나 충동적일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킨 효과도 기대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당선인이 실제 정부 운영과 관련, 전통적인 접근법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긍정 평가했다.
공화당 주류는 쿠슈너와 배넌의 비서실장 지명 가능성에 반감을 표시해 왔다. 쿠슈너는 당선인의 가족이라는 점에서, 배넌은 대선 기간 중 ‘트럼프 후보를 적극 돕지 않는다’며 라이언 의장 등 당내 인사들을 거칠게 공격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도 “만약 배넌을 비서실장으로 선택했다면 공화당 주류 진영의 거센 반발을 샀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프리버스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부터 주류 진영과 트럼프 후보의 가교 역할을 맡았다. 특히 당선인이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뒤에도 반 트럼프 인사들의 방해로 후보선출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7월말 후보 선출 전당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트럼프 당선인도 지난 9일 새벽 대선 승리 연설 도중 프리버스를 무대 위로 불러 올려,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고 공로를 인정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프리버스 비서실장 인선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정권 초기 주요 정책에서 의회로부터 적극적 협력을 얻는데 발판을 마련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란 핵합의 폐기, 무역협정 재협상, 불법 이민자 추방, 불법 이민자 유입 차단을 위한 장벽건설,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안) 폐지 내지 대폭 수정 등 트럼프 당선인의 핵심 공약을 입법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싫든 좋든 친정인 공화당과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처지다.
반면 프리버스 비서실장 지명에 대해 일부 강경 지지자들의 강한 반발 조짐도 감지된다. 당선인의 오랜 친구인 로저 스톤은 전날 트위터에서 “프리버스를 선택하는 것은 트럼프 지지층의 반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스톤을 비롯한 일부 강경지지자들은 프리버스가 대선 내내 화끈한 지지를 선언하지 않고 오히려 결별 선언으로 선거를 방해한 라이언 의장과 가깝다는 점 등을 들어 프리버스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해 왔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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