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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타자기

입력
2016.11.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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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정태는 딸만 여섯인 집의 둘째였다. 학교 앞 산비탈 집 알루미늄 새시 문을 드르륵 열면 신발이 가득한 댓돌과 툇마루가 있었고 작은 부엌과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에서 조부모님 두 분, 부모님 두 분, 그리고 딸 여섯이 함께 살았다. 학교가 일찍 끝나는 토요일이면 나는 정태네 집에서 국수를 얻어먹었다. 노랗고 커다란 솥에서 정태 어머니는 끝도 없이 국수를 건져냈다. 밥상을 펴놓으면 다 앉기도 힘들어 정태와 나는 툇마루에 앉아 먹었다. 정태 아버지는 어느 날 합판을 가져와 방 한쪽에다 벽을 세웠다. 큰딸과 둘째딸만이라도 방을 따로 내어주고 싶어서였다. 앉은뱅이책상 한 개가 들어앉은 공간이다 보니 딸 둘이 누울 자리가 부족해 결국 그 방은 큰딸만 쓰게 되었다. 그래도 그날 나는 정태의 새 방을 축하하러 놀러 갔고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여있던 타자기를 처음 보았다.

“우리 언니 거야.” 서툰 솜씨로 타자기를 쳐보이는 정태 앞에서 나는 넋을 잃었다. 찰크닥찰크닥, 글자가 찍혀나오던 신비로운 물건. 부러워하는 나를 위해 정태는 종종 타자기로 쓴 편지를 내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물론 정태는 위문편지를 보내다 알게 된 군인아저씨에게 매일매일 편지를 쓰느라 바빠서 나는 늘 뒷전이었지만. 정태는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타자 자격증도 땄다. 그리고 스물한 살이 되어 그 군인아저씨와 결혼을 했다. 신혼집은 점집의 문간방이어서 사글세가 쌌다. 가끔 찰크닥찰크닥 하던 타자기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그거 정말 예쁜 소리인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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