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의 명령 “대통령 하야”
남녀노소 어우러져 절제된 분노
어떤 난관도 극복할 국민 저력 보여
“박 대통령에겐 이제 시간이 없다”
분노는 뜨겁고 차가웠다. 요구는 준엄했다. 외침은 하나였다. 물러나라. 끓어오르는 심정을 국민은 애써 꾹꾹 눌렀다. 무서우리만치 냉정한 자제. 절제된 분노. 국민의 외침은 그래서 더 엄중했다. 12일 국민은 기적을 일궈냈다. 100만개 촛불은 한 마음으로 평화 집회를 치렀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내내 빛을 발하고,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위대함이 확인된 밤이었다. 30년 전 100만이 모인 6∙10 민주화항쟁 장면과 오버랩돼 전율이 느껴졌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섰다 했다. 그리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미안하다 했다. 아이들도 이런 나라와 정부에 자신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했다. 그 분노는 청와대를 뒤흔들었다. 물러나라는 외침은 북악에 반사돼 더 크게 울렸다. 불과 800m 앞 거리와 광장에 운집한 100만 촛불의 성난 함성에 박근혜 대통령은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고심이 깊을 것이다. 분노하는 민심을 달래고 위기를 타개할 방안을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박 대통령 편이 아니다. 결단이 늦을수록 박 대통령이 헌정사의 오욕으로 남을 확률은 더 높아진다. 헌법상 지위 운운은 국민 분노만 키울 뿐이다. 상황이 나아지면 대통령으로서 권력과 권한을 행사하려는 꼼수로 읽힌다. 국정 혼란을 우려하겠지만 국민은 어떤 난관도 극복할 저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무엇이 국가와 민주주의, 자신과 아이들 미래를 위해 필요한지도 잘 알고 있다. 100만 촛불의 평화 집회가 그것을 증명해 보였다.
현 상황을 풀 다른 묘안이란, 없다. 사태 해결의 첫 단추라도 잘 꿰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박 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뿐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박 대통령 자신이 초래한 결과다. 박 대통령은 이미 국민적 탄핵을 받았다. 국민 누구도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존엄을 인정하지 않는다. 촛불 민심은 하야를 요구했다. 2선 후퇴든, 더한 무엇이든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내려놓는 길을 택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한 조각의 명예라도 지킬 수 있다. 시간이 없다.
황상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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