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계절을 거스르는 자연현상에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단풍도 끝나가고 겨울의 초입에 접어든 시기,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 철없는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렸다. 여린 꽃잎은 무서리 한 두 번이면 시들어 버릴 테니 열매 맺기는 아무래도 글렀다.
그런데도 식물은 왜 이런 실수를 하는 걸까? 개화시기는 일조량과 기온에 민감한데 바위에서 반사되는 볕이 따사로워 계절을 착각한 걸까? 어쩌면 지구온난화에 대비하는 고도의 전략일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제철에 피는 꽃이라도 모든 꽃잎을 한꺼번에 터트리진 않는다. 주로 위에서 아래로, 가운데서 주변으로 시차를 두고 차례로 개화한다. 이 진달래도 수십 개의 꽃눈 중 단지 몇 개만을 먼저 피워서 가을에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실험 중일 수 있다.
아주 먼 훗날 봄 꽃의 대명사인 진달래가 늦가을을 대표하는 꽃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팀 차장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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