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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민중총궐기] 청와대 포위한 100만 촛불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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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민중총궐기] 청와대 포위한 100만 촛불의 바다

입력
2016.11.1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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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명이 모인 광화문 네거리
100만명이 모인 광화문 네거리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 내자동로터리에 집결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고 있다. 김정현 기자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 내자동로터리에 집결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고 있다. 김정현 기자

“지금 당장 퇴진하라 오늘 당장 퇴진하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 내자동로터리에 집결한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촛불을 들고 일제히 함성을 외치기 시작했다. 청와대에서 불과 800여m 떨어진 거리다. 이 곳에서 시작된 함성은 율곡로를 지나 세종대로, 종각, 서울광장은 물론, 멀게는 남대문까지 3㎞ 넘게 울려 퍼졌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일 오후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일 오후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집회 시작 전 이미 50만명… 결의 다진 시민들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100만개의 촛불이 12일 오후 서울 도심 한 자리에서 타올랐다. 이른 아침부터 노동자, 농민, 여성, 장애인, 학생 등 개별 단체들은 서울 각지에서 정권 퇴진이란 하나의 목표 아래 전의를 다졌다. 농민단체 연합인 ‘농민의 길’ 회원 1만5,000여명은 서울 중구 삼성본관 앞에서 사전집회를 열고 박 대통령의 하야와 함께 “내가 백남기다, 백남기를 살려내라”라고 소리쳤다. 부산, 창원 등 전국에서 모인 비정규직 서비스연맹 노조 회원 1만4,000여명 역시 세종대로 앞에서 국정농락 사태에 책임을 묻는 동시에 각종 노동현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청년과 고교생들도 어김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낮 12시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선 50여개 대학 총학생회와 청년 4,000여명이 참석해 ‘2016 청년총궐기’를 개최했다.

오후 4시 결의를 마친 시민들은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참가자 수는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박근혜 대통령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예상한 최소 인원 수인 50만명에 육박했다.

참가자들은 최순실 게이트 외에도 세월호 참사, 쌀값 폭락, 백남기 농민 사망, 국정교과서 강행,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ㆍTHAAD) 배치 등을 두고 현 정부를 비판하며 박 대통령 퇴진에 목소리를 높였다.

전명선 4ㆍ16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박 대통령은 이미 모든 국민들에게 명령을 받았다. 청와대에서 당장 내려오라는 것”이라며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신 304명은 이 나라의 주인이자 국민이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그 고귀한 국민의 생명을 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뒤 숨진 농민 고 백남기씨의 큰 딸 도라지씨는 “아버지가 이 대회에 참석하셨다가 사고를 당하신 지 1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더 나빠져만 가는 것 같다”며 “박 대통령 재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사고들이 있었지만 (대통령은) 단 한번도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3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참가자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광화문 앞에서 청와대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3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참가자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광화문 앞에서 청와대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세종대로~남대문 3㎞ 촛불 장관… 100만 함성 청와대로

1시간 여 행사가 끝난 뒤 이날 집회의 하이라이트인 도심 행진이 시작됐다. 어느 새 성난 민심은 85만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경찰도 참여 인원을 22만명으로 추산했다. 경찰이 당초 예상한 최대치 17만명을 훌쩍 뛰어 넘은 것이다. 2008년 6월10일 광우병 촛불집회(주최 측 70만명, 경찰 8만명)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12일 오후 경복궁 앞으로 행진한 시민 100만명이 청와대를 향해 함성을 외치고 있다. 곽주현 기자
12일 오후 경복궁 앞으로 행진한 시민 100만명이 청와대를 향해 함성을 외치고 있다. 곽주현 기자

시민들은 서울광장을 출발해 종로, 을지로, 의주로 등 다섯 갈래로 나눠 청와대 진입로인 내자동로터리로 향했다. 경찰은 원래 교통 방해를 이유로 경복궁역까지 진출하지 못하도록 행진경로를 제한하는 조건 통보를 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법원이 주최 측이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애초 신고한 경로대로 행진이 가능해졌다. 100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북쪽과 동쪽, 서쪽으로 거대한 촛불 물결을 이루면서 점차 청와대를 포위하는 형국이었다. 서울광장에서 경복궁으로 나 있는 직진 구간은 발을 디딜 틈도 없었다.

‘박근혜 하야하라!’ ‘국민이 주인이다!’ 등 입 밖으로 터져 나온 구호는 단단했지만 행진 풍경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남녀노소와 세대를 초월한 시민들은 하나로 뭉쳤다. 정부서울청사에서 경복궁으로 가는 길목 중간에 중ㆍ고교생 4,000명이 행진을 마치고 도착하자 어른들은 환호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맞았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에도 “평화시위 유지합시다. 뒤로 물러나서 앉아주세요” 등 경찰과의 충돌을 막기 위한 자정의 목소리가 시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인천에서 온 김서규(48)씨는 “박 대통령을 뽑은 건 아니지만 기성세대 입장에서 청소년들에게 미안하다”며 “물리적 행동보다 평화가 앞서가야 한다. 박 대통령이 내려올 수 있게 구호를 외치자”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행진 마지노선인 경복궁역 앞에서 경찰이 쳐 놓은 차벽 앞에 앉아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한 50대 남성은 “경찰과 검찰은 왜 범죄혐의자인 대통령을 잡지 않고 우리를 막습니까”라고 되물으며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은 자리에서 내려와 잘못을 낱낱이 밝히라”고 외쳤다. 경기 고양시에서 왔다는 여중생 심모(15)양은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고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다. 이 모든 문제를 만든 뿌리까지 없애기 위해 새누리당의 자진 해체를 제안한다”고 당찬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자발적 시민 발걸음 더 늘어… 한 때 충돌 위기도

이날 집회는 당초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등 여러 시민ㆍ사회단체가 계획했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발길은 더 늘었다. 전유진(33ㆍ여)씨는 12개월 된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광화문광장에 나왔다. 어느 단체에도 속하지 않은 그는 “아이에게 반드시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전씨는 “세월호 참사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그리고 이번 사건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가 뭔지, 또 권력이 시민에게 있다는 게 뭔지 아들이 아직은 모르겠지만 현장을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각종 사전집회와 문화행사가 열려 붐볐던 광화문광장 남단과 달리 사뭇 한산했던 북단에서는 시민들이 잔디밭에 앉아 마치 소풍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6세 때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박대운(45)씨도 광장에 앉아 문화제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는 “어렵게 낳은 소중한 자녀들의 앞날을 조금이라도 밝게 해주려고 나왔다. 뉴스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에 화병이 날 것 같았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 시민들을 만나니 나아졌다”며 웃었다. 영어교사인 미국인 라이언 베스트(30)씨는 “한국에 온 지 4년이 됐는데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며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데도 평화롭다는 게 멋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목소리를 내는 광경은 민주주의의 최고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5만명의 시위대가 내자동로터리에 한꺼번에 집결하자 청와대로 가려는 시민들이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앞서 청와대 영정 사진을 이용해 장례 퍼포먼스를 했던 농민단체 회원 중 일부가 상여를 실은 스타렉스를 몰고 들어와 위기감이 고조됐다. 대다수 시민들은 “평화시위를 해야 한다”며 이들을 달랬지만 농민들은 “비키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행진이 끝나고 범국민 문화제가 시작될 무렵 박 대통령이 물러나기를 바라는 민심은 주최 측이 예상했던 100만명을 기어이 찍었다. 경찰도 26만명 운집으로 규모를 늘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에 쏟아졌던 환희의 100만 함성은 청와대를 향한 분노의 함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민중총궐기 대규모 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청운동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민중총궐기 대규모 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청운동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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