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도 결국 품질 경쟁입니다. 여기서 지면 머지않아 중국의 문화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문화콘텐츠 산업 전문가로 손꼽히는 고정민(57)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한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중국시장에서 한류 산업이 성장을 멈추지 않으려면 핵심인 문화콘텐츠는 물론 파생 산업의 질적 경쟁력이 확보돼야 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중국은 내다 팔기만 하면 지갑을 열기 바쁜 시장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고 교수에 따르면 한류는 마치 할리우드 문화가 그렇듯 전 세계인들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지 오래다. 한국 드라마와 가요 같은 대중문화로 촉발된 한류가 이끈 경제적 파급효과도 막대하다. 화장품을 비롯한 각종 미용산업을 지칭하는 이른바 ‘K-뷰티’부터 게임, 관광 등에 이르는 한류의 생산유발 효과만 지난해 15조원을 넘어섰다. 서울 명동만 가도 한국 아이돌 그룹을 모델로 내세운 화장품을 구입하기 위해 줄지어 선 외국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한류에 열광하는 주기가 급격히 짧아졌다고 고 교수는 우려했다. 그는 “드라마 한 편이 성공하면 그 인기가 몇 년 동안 이어졌던 과거와 달리 반짝 인기를 끌다 새로운 콘텐츠에 바로 자리를 내주는 상황으로 한류의 패턴이 변했다”고 말했다. 수시로 바뀌는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해 보다 다양한 콘텐츠의 발굴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한류 때리기에서 보듯 ‘혐한 정서’도 한류산업의 걸림돌로 꼽힌다. 고 교수는 “중국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콘텐츠 교류는 항상 희생양이 돼 왔다”며 “문화가 국가의 정체성 및 대표성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라며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고 교수는 이런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꼽았다. “국적을 초월한 개방적 공간이야말로 문화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도 SNS가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시장에 한류가 진입하고 전파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한류 붐을 타고 K-뷰티 등 부가산업도 당분간 고속성장을 유지할 전망이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다. 이미 중국업체들은 국내 전문인력과 마케팅 노하우를 확보하는 데 혈안이다. 고 교수는 “산업 규모가 커지면 후발국이 오히려 선진국을 압도하는 ‘부메랑 효과’가 한류에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시장으로만 여겼던 중국이 어느새 각 산업분야의 경쟁자로 떠오른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질적 경쟁력을 키우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순히 아이돌 그룹이 좋아서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는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고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중국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협의 대상”이라며 “양국 간 갈등 없는 교류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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