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도박으로 밑천을 탕진하고 오갈 데 없는 자신에게 일자리와 거주지를 제공하며 재기를 돕던 은인을 필리핀에서 살해한 남성이 범행 11년 만에 죗값을 치르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 유남근)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모(41)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필리핀 정착에 큰 도움을 준 피해자를 살해했고, 그 어머니는 아들 사망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병으로 숨졌다”며 “(그럼에도 전씨는) 사고 발생 뒤 10년간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우발적 범행이며, 필리핀에서 5년간 구금돼 재판 받은 사정 등은 고려됐다.
도박으로 7,000만원을 잃고 직업도 없던 전씨는 “함께 관광가이드 일을 해보자”는 피해자 A(사망 당시 29세)씨의 권유로 2005년 6월 필리핀 세부로 떠났다. A씨는 전씨를 여행사에 취직도 시켜줬고, 여자친구와 단둘이 사는 집에 전씨도 살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전씨는 호의를 악행으로 갚았다. 그 해 10월 전씨는 직장동료들과 술을 마신 뒤 집에 들어가 자고 있던 A씨를 깨워 돈 문제로 시비를 걸다가 상대가 대꾸하자 주방에 있던 흉기로 A씨를 두 번 찔렀다. 전씨는 곧장 달아났고, A씨는 가정부의 신고로 병원에 실려가던 도중 과다출혈로 숨을 거뒀다.
전씨는 필리핀 경찰에 체포돼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지만, 증인과 참고인 등이 재판에 참석하지 않아 5년 뒤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전씨는 세부에서 불법 체류하며 현지 여성과 결혼하고 자녀도 뒀다. 이후 생활고를 해결하려고 귀국한 전씨는 인터폴 등을 통해 범죄사실을 확인한 경찰에 체포됐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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