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홍본영
얼마 전, 이반 피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관람했다. 이반 피셔는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 지휘자로, 그가 지휘하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1983년 본인의 주머니를 털어 만든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다. ‘페스티벌’이라는 단어가 붙는 오케스트라는 각 오케스트라에서 잘하는 사람들을 뽑아 특정기간에만 모여 앙상블을 맞추는 악단을 뜻하지만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1년 내내 활동했다. 현재 헝가리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았다.
이 오케스트라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자유가 없던 시절에 헝가리에서 사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진 것도 그렇지만, 세계적인 유명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이반 피셔가 33년이나 지휘봉을 잡은 것에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만에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 리그에 합류한 것까지 궁금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공연을 보면서 그 궁금증들이 모두 풀리는 듯했다.
- 연주에 묻어나는 ‘사랑하는 마음’
우선, 연주회를 진행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프로 의식 이상의 어떤 애정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을 위해 뭉친 만큼 음 하나 하나에 깃든 정성이 참으로 대단했다. 모두 ‘사명감’으로 한마음이 된 느낌이었다. 단원과 지휘자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호흡을 맞추어 가는 연주에 매료되어 나는 시작부터 눈시울을 붉혔다. 그들의 음악은 재능과 노력을 넘은 헌신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국가나 지역에서 특정 분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재들의 헌신이 필요하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선진국에서는 개발도상국의 발전 가능성을 유학생의 유턴 비율로 점친다. 고국으로 많이 돌아갈수록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몇 해 전 자메이카, 아이티, 가나 같은 나라 의사의 30~40%가 고국을 떠나서 일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가뜩이나 힘든 국가들이 그나마 배출한 똑똑한 인재들마저 타국으로 떠나버리기 때문에 의학을 비롯한 경제 발전이 힘들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인재 유출 협약’이라는 아이디어가 제시되기도 했다.
우수한 인재들이 각자 자신을 키워준 땅에 헌신한다는 마음으로 활동의 일부를 고국과 자기 지역에 할애한다면, 그 지역에 얼마나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인가. 예를 들자면, 일본에서 세계적인 농학자로 자리 잡았지만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에 돌아와 순교자 같은 태도로 연구에 몰두하며 한국 농학을 발전시킨 우장춘 박사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음악인 중에도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처럼, 조국에 도움이 되는 활동이라면 빈약한 조건에도 기꺼이 팔을 걷어 부친 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 헌신적인 예술가들이 음악에 기여한 바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과학자가 고국에서 연구를 하고 후진을 양성하면 그 분야가 발전하듯, 자기 지역에 대한 음악적 헌신은 그 지역에 팬 층을 형성하고 저변을 확대한다. 클래식이면 클래식, 뮤지컬이면 뮤지컬, 대중음악이면 대중음악 모두 다 그렇다. 특히, 세계적으로 성공한 예술가가 모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고향에 대한 채무감, 혹은 피와 정을 나눈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국가와 지역을 위해 활동한다면 그 영향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 음악가들의 지역사랑, 음악의 영토 넓히는 첩경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만큼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 성악가들이 세계 콩쿠르를 휩쓸지만(내가 몸담았던 일본의 극단 사계에 주요 배역들을 대개 한국인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국에 활동 할 무대가 적어 귀국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국가도 지역도 나라의 인재들이 마음껏 고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텃밭을 만들어주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음악인들이 마음껏 자기 지역을 사랑할 수 있도록, 갈고 닦은 능력으로 후대를 양성하도록 여건을 조성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음악가들이 크고 작은 현실의 장애를 극복해가면서 각자 본인이 나고 자란 지역의 음악적 저변을 넓히고 팬 층을 만들어간다면, 이는 지구촌 전체의 문화 소비가 더 풍성해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음악나라’의 영토가 확장되는 것이다.
음악적 영토는 아무리 넓어져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것이 넓어질수록 남의 것이 줄어드는 땅 따먹기와는 다르니까. 이를테면, 뮤지컬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많이 늘어난다고 해서 피해를 보는 사람이나 나라는 없다. 다양한 분야의 음악 팬 층이 두터운 지역이 더 늘어나는 것은, 음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활동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다. 결국 모두에게 득이다.
이반 피셔라는 한 예술인이 애국심을 불태워 탄생시킨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처럼 우리도 멋진 음악 단체를 얼마든지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각 도시마다 뛰어난 오케스트라와 뮤지컬 단체나 축제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질 것인가. 만약 음악인들이 하나같이 이해타산 혹은 출연료만을 기준으로 무대를 고른다면,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같은 뛰어난 ‘지역 오케스트라’는 탄생할 가능성은 없다. 더불어 음악이라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예술에 익숙해질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 지역에는 좋은 연주회가 열릴 가능성도 줄어든다. - 관객이 없을 테니까.
결국 누군가의 헌신이 없는 지역은 음악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이다. 성경에서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기록했는데, 음악적 믿음과 소망이 뭔지 콕 찍어 말하긴 힘들지만, 사랑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음악과 그 음악을 즐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음악과 사람에 대한 헌신이 음악의 영토를 넓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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