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친구들과 함께 적금을 부은 적이 있었다. 아프리카 케냐 여행을 위한 것이었다. 한 명은 중간에 포기했고 나머지 세 명은 3년을 꼬박 채웠다. 하지만 한 명은 휴가를 내지 못했고 나는 에어컨을 새로 사느라 적금에 구멍이 났다. 나머지 한 명은 혼자 떠나지도 못해서 토라지고 말았다. 결국 토라진 친구를 달래 짧게 캄보디아를 다녀오고 끝냈다. 어제는 날이 몹시 추워 기분도 싱숭생숭하기에 그때 토라졌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적금 붓자.” 친구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또 왜? 어딜 가고 싶어서?” “3년만 적금 부어서 따뜻한 캘리포니아엘 가는 거야. 여섯 달만 살다 오자고.” 허황한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친구는 또 신이 났다. “공용 수영장이 딸린 조그만 타운하우스를 빌리면 돼. 방은 두 개면 되지. 오전엔 아기들을 유치원에 보냈다가 오후엔 수영장에서 놀게 하고. 우리는 책 읽다 자고 맥주 마시다 자고.” “트럼프가 싫어하지 않을까?” “그러든가 말든가.”
트럼프가 뭐라 하건 마음의 결정은 다 끝났다. 돈 문제만 남았다. 3,000만원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친구가 말해서, 내가 물었다. “그럼 한 달에 얼마씩 내야 해?” “100만원은 내야지.” 내가 다시 물었다. “10만원이 아니고 100만원이야?” 친구는 야멸차게 밤 인사를 건넸다. “됐다, 자라.” 캘리포니아에서의 여섯 달 휴가는 다음 생에서나 가기로 하고 나는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최씨 자매는 한 달 곗돈으로 3,000만원도 부었다는데. 나 어릴 적 동네 아줌마들과 계를 붓던 엄마는 그때 얼마씩 넣었을까. 한 번 물어볼까? 그때 우리 엄만 늘 계 ‘오야’였는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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