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1.11
마틴 루터 킹 시니어(Martin Luther King Sr, 1899~1984)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아버지다. 그는 미국 조지아주 침례교회 목사로 아들 못지 않은 흑인 인권운동가였다. 그의 본명은 마이클 킹(Michael King)인데,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에게 감화돼 1934년 개명했다.
조지아 주 스톡브리지에서 태어난 킹 시니어는 지역 흑인 인권운동의 거점이던 에버니저(Ebenezer) 침례교회를 다니며 어려서부터 설교자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교단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녔고, 모어하우스 종교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6년 결혼(Alberta)해 1녀 2남을 낳았다. 킹 주니어는 둘째이자 장남이었다.
킹 시니어의 연설은 대단했다고 한다. 대공황기 교회의 존립 자체가 힘들었던 무렵에도 그는 신도들의 존경을 받으며 교회 살림을 키웠고, 32세에 에버니저 교회 목사가 됐다. 스스로 마틴 루터 킹이라 개명한 건 독일을 다녀온 직후였다. 그는 법적으로 개명하진 않았지만 장남 마이클 킹 주니어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됐다. 킹 시니어는 40년간 에버니저 교회와 남부 흑인 커뮤니티를 이끌며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애틀란타 지부와 시민정치연맹(CPL) 리더로 활동했고, 애틀란타 종교 방송 WAEC에서 설교하기도 했다.
킹 주니어는 50년 자서전에 “아버지는 내게 단 한 번도 목사가 되라고 말한 적 없었지만, 나는 그를 존경했고 그를 내 생의 모범으로 삼았다”고 썼다. 유년 어느 날 그는 아버지와 함께 구두 가게에 갔다가 자리를 바꿔 앉으라는(백인 자리에 앉지 말라는) 주인의 말에 분노하던 모습을 전하며 킹 주니어는 “아버지는 남부의 시스템(인종 분리ㆍ차별)에 결코 순응한 적 없었다”고 썼다. 백인 경찰이 아버지 차를 세워선 “꼬마야”라고 부른 적이 있었는데, 킹 시니어가 아들을 가리키며 “얘가 꼬마이고 나는 성인이다. 당신이 나를 온당하게 부르기 전까지 나는 당신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구절도 있다.
그는 77년 흑인 괴한이 쏜 총에 아내를 잃었다. 68년 장남 킹 목사의 피격에 이어 차남도 69년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 시련 속에서도 그는 흑인대학 모어하우스대학 이사회 멤버로 흑인 교육 및 흑인대학 발전에 힘썼고, 76년 지미 카터의 대선을 돕는 등 인권운동에 헌신했다. 그가 1984년 11월 11일 별세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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