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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다수’ 명성 격세지감…제주인의 생명수, 샘물

입력
2016.11.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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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마을들은 바닷가에 집중돼 있다. 바닷가가 먹거리가 풍부하다기 보다는 물을 구하기 쉽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 대부분의 샘이 바닷가 근처에서 용출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제주에서 물을 구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산방산 약수 ⓒ강정효
산방산 약수 ⓒ강정효

제주도 전설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고종달 전설이다. 임금이 나올 제주도의 지맥을 중국 황제가 보낸 풍수사인 고종달이 끊는다는 얘기인데, 이때 물의 신이 몸을 피해 수맥을 이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대표적인 경우가 서귀포시 서홍동에 위치한 지장샘에 전해진다. 제주도를 지키는 힘, 그 옛날 제주의 선인들은 샘에서 그 의미를 찾았던 것이다.

이처럼 제주의 선인들에게 있어서 샘은 신이 존재하는 곳으로 인식돼 왔다. 그만큼 물이 귀했기 때문에 샘을 얼마나 신성시 했는가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일제강점기 제주의 민속을 조사한 내용 중에 샘을 만들 때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첫째, 마을의 남쪽에 샘을 파면 그 마을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샘을 파는 날은 천기대요에 의해 천감일로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샘을 파는 날에는 지진제를 올려라. 그렇지 않으면 물이 다른 마을로 도망칠 것이다. 넷째, 지진제에는 밥과 술을 우물을 팔 예정지에 올리고 밥을 술 속에 넣어 삼배한 후 경문을 낭독한다. 다섯째, 샘을 수리하는 경우에도 똑같이 제사를 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은 다른 마을로 도망칠 것이다.

이처럼 샘을 신성하게 여겼기에 자기 마을의 샘에 대한 자랑도 빠지지 않는다. 예를 든다면 콜레라 등 역병이 제주도 전역에 번질 때 우리마을은 샘물이 좋아 무사했다는 내용이다. 동회천(새미마을)의 샘이나 애월읍 상귀리에 위치한 구시물 등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새미마을은 1910년대에 인근에 사찰이 생긴 이후 갑자기 용출량이 감소하자 사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결국 사찰을 허무는 경우도 있었다.

북촌리 샘 ⓒ강정효
북촌리 샘 ⓒ강정효
삼양동 샘 ⓒ강정효
삼양동 샘 ⓒ강정효
상귀 구시물 ⓒ강정효
상귀 구시물 ⓒ강정효
오조리 족지물 ⓒ강정효
오조리 족지물 ⓒ강정효
유수암 ⓒ강정효
유수암 ⓒ강정효

제주시 도평동의 용장굴이라는 사찰에는 절에서 불공드릴 때 차를 달이는 용도로 쓰이는 샘물이 있다. 이 사찰의 신도들은 다기(茶器)물이라 부르는데, 이 샘에서 부정한 이야기 또는 허튼 소리를 하면 일년 내내 마르지 않던 샘물이 순식간에 말라버린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때 그 당사자가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해야만 신의 노여움에서 풀려 다시 샘물이 나왔다고 한다.

1970년대 수도시설이 갖춰지며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제주에서 샘은 마을을 구성하는 첫 번째 필수요소였다. 특히 중산간 마을은 물을 구하는 것이 더더욱 문제였다. 실제로 필자가 살던 마을은 인가에서 1km 떨어진 곳의 샘에 가서 물을 길어다 식수로 쓰는 수고로움까지 감내해야만 했다. 이때 물허벅을 등에 지고 나르는 아낙네의 고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인가 가까운 곳에서 샘물을 찾게 되면 마을에서 잔치를 벌였다고 전해질 정도다.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샘 형태를 보면 물이 용출하는 곳을 중심으로 바닥에는 평평하게 다듬은 돌을 깔고, 그 둘레에 돌담을 쌓아 울타리를 조성한다. 식수로만 쓰이는 경우는 단독으로 샘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수량이 풍부할 경우에는 몇 단으로 나눠 차례대로 식수용, 야채를 씻는 곳, 빨래를 하는 곳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오늘날 삼다수로 대표되는 제주의 물은 우리나라 생수시장을 석권하며 최고의 먹는 물로 그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불과 4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존을 위해 물을 찾아 나섰던 과거를 뒤로 한 채.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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