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선될 경우, 금융시장에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10배가 넘는 충격이 올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공언이 9일 전세계 금융시장에 진짜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지난 6월 ‘브렉시트 쇼크’ 때처럼, 모두의 예상을 뒤집은 트럼프의 당선이 몰고 올 세계경제의 지각변동에 투자심리는 일제히 얼어붙었다. 공포와 충격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전문가들조차 향후 금융시장의 향방에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어서다.
‘브렉시트 2탄’ 겪은 주식ㆍ외환시장
이날 국내 금융시장은 ‘제2의 브렉시트 파동’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롤러코스터를 탔다. 미국 현지에서 투표가 마감돼 가던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국내 코스피지수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기정 사실로 여기며 상승세로 출발했다.
불길한 조짐이 감지된 건 오전 10시15분께. 2,010선을 넘어섰던 코스피가 갑자기 하락하기 시작했다. 플로리다, 오하이오 등 힐러리의 승리가 점쳐졌던 경합주에서 트럼프가 앞설 기미를 보이자 투자자들이 하나 둘 주식을 내던진 것이다. 오전 10시57분께 결국 마이너스로 돌아선 주가는 오후2시6분께 1,930선 근처까지 내려 앉으며 바닥을 찍었고, 장 막판 기관들의 반발 매수세에 힘입어 가까스로 1,950선을 회복하며 장을 마쳤다.
원ㆍ달러 환율은 정반대로 솟구쳤다(원화 약세). ‘트럼프 리스크’가 수출 위주의 국내 산업에 끼칠 충격을 우려한 결과다. 오전 10시께 달러당 1,135원 수준이던 환율은 낮 12시반 1,153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이날 국내 주식시장 상장 종목 2,087개 중 425개(20.3%) 종목이 52주 신저가를 기록했고 코스피지수 하락폭(45.00포인트)은 올 들어 4번째로 컸다.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만 2,139억원 어치를 순매도하며 공포심리를 주도했다. 한 달 뒤 지수가 얼마나 변할지 예측해 일명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이날 하루 16.59% 급등하며 브렉시트 사태 직후였던 지난 6월27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시아와 유럽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5.36%나 폭락했고, 홍콩과 대만 주가도 각각 2.16%, 2.98% 급락했다. 트럼프 당선 확정 후 개장한 유럽증시는 2%대 하락세로 출발해 우리시간 오후 8시30분 현재 범유럽지수인 유로스톡스 -2.02%,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1.61%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시계 제로… 엇갈리는 전망
선거 기간 내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저돌성을 보였던 트럼프의 당선은 금융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불확실성을 극도로 높이고 있다. 당장 전세계가 주목하던 미국의 금리인상이 어떻게 될지, 트럼프가 공언했던 반이민 정책, 보호무역주의가 어느 정도로 현실화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는 상태다. 강현철 NH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미국 등 선진국 경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같은 신흥국은 트럼프 정부의 정책으로 인한 피해 우려가 높아 증시는 일시적 폭락 가능성이 크다”며 “우리 증시 역시 1,900선 아래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성과 시장의 패닉 양상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글로벌마켓전략실 팀장은 “브렉시트 이상의 충격이 한동안 계속될 수 있다”며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반덤핑 관세 강화 등 보호무역 기치를 걸었던 트럼프 당선자의 정책들이 구체화될 때까지 상당기간 불확실성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 자체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리스크를 높인 측면은 있지만, 미국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의 힘도 있어 브렉시트급 충격은 아닐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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