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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하야’와 ‘사퇴’

입력
2016.11.0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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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참 공부 많이 했잖아. 그래서 처음 대통령 해가지고 고생도 을마나 했겠나.” 프란체스카 여사에 대한 환상도 가지고 있다. “야, 전두환 땐 도둑이 하나도 없었어. 그땐 뭐만 하면 삼청교육대로 다 붙들려 갔잖아. 우리 동네서도 맨날 노름이나 하고 툭하면 아줌마 줘 패던 놈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고마 없어졌어. 붙들려 간 기야. 우리 같은 사람이 살기엔 그때가 젤 좋았지.” 전두환 전 대통령 가진 돈이 27만원밖에 없다는 소리에 엄마도 쓴웃음을 짓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때 대통령인데 지도 먹고는 살아야지…” 그런 희한한 동정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엄마는 몹시 실망스러워했다. “아무리 그래도 고등학교밖에 안 나와서 뭔 대통령을 하나.” 그러면서도 “옛날로 치면 임금이잖나. 임금 자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거지. 고등학교 밖에 안 나왔어도 저 사람은 하늘에서 내린 사람인 기야” 그랬다. 그래서 욕을 안 했다.

요즘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소리가, 나는 엄마의 말 만큼이나 엉뚱하게 들리기도 한다. 대통령 자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고 우리가 임명해주는 건데, 그렇게나 극존칭을 써야 하나. 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르던 일도 콩죽 먹던 시절 이야기고 ‘영부인’ 대신 ‘여사’라고 부르는 날들인데. 그냥 ‘대통령 사퇴’라고 하면 안 되나. 임금도 아닌데 말이다. “저 봐라, 친구 하나 잘못 만나 이기 뭐꼬? 내 아무리 좋게 좋게 생각해줄라 해도 아주 울화가 팍 치민다, 야.” 박 대통령이 안쓰러워 안달복달하던 엄마까지 그러는 걸 보면 지지도가 바닥을 찍는 날이 머지않은 모양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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