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밥 굶고 담 넘는 학생들
채식 식사 위해 외출해야 하지만
“왜 급식 못 먹냐” 꾸중 듣기 일쑤
대체식품도 가격 비싸 이중 부담
2. 메뉴 다양성 확보해야
佛ㆍ美, 급식마다 선택 식단 제공
국내선 광주에서 도입했다 폐지
“소수만의 문제 아닌 선택권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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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안 먹는다고 해서 매일 점심을 밥에 김치만으로 때울 수는 없잖아요.”
경기 과천시 A고등학교 2학년 서모(17)양은 어릴 적 아토피를 겪은 이후 줄곧 채식 식단을 유지해온 청소년 채식주의자다. 서양이 다니는 학교는 학생들 사이에 급식이 맛있기로 소문났지만 정작 서양의 젓가락이 향하는 곳은 김치와 밥뿐이다. 서양은 "중학교 때부터 같이 채식을 해온 친구들이 있었지만 고등학교에 와서는 다들 포기하고 나만 남은 상태"라고 체념했다.
10대 채식주의자들이 굶고 있다. 채식주의 청소년들은 건강상 또는 신념상 이유로 채식을 선택했지만 그 대가는 혹독하다. 육류 위주의 급식 탓에 한창 자랄 나이에 영양분이 부족할 뿐 아니라 또래 문화에서 배제돼 소외감까지 느끼고 있다.
채식주의 청소년들이 원하는 식사를 하기 위해선 채식 메뉴를 찾아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하지만 이는 굶는 것보다 어렵다. 3년째 채식 중인 경기 성남시의 고3 이모(18)양은 "외출증을 끊어달라고 담임선생님께 말씀 드렸지만 오히려 ‘왜 너만 못 먹냐 그냥 먹으라’고 꾸중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학교 담벼락을 넘는다. 밥 한 번 먹기가 너무나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대체식품을 사가기도 하는데, 청소년이 감당하기엔 비싸다. 이양은 “채식용 대체식품을 사면 하루 용돈의 80%(8,000원) 이상이 사라진다”고 토로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채식주의자였던 남모(26)씨는 “의무적으로 기숙사에 살아야 하는 학교 규정이 있었던 탓에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근처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선 학생들을 위한 채식주의 식단이 꾸려지기도 했다. 2012년 광주시교육청은 전국 최초로 채식식사를 고를 수 있는 ‘선택급식’을 도입했다. 그러나 신청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2년 만에 폐지했다. 광주시교육청 관계자는 “소수 학생을 위해 돈을 따로 배정해야 하기 때문에 예산 효율성 차원에서 폐지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급식 다양성 확대 차원에서 매년 학교급식 모범 사례를 뽑아 각급 학교에 나눠주지만 무상급식 비중이 높은 초등학교에 한정된다. 정은정 농촌·농업 사회학자는 “올해 3월 기준 초등학교 무상급식 비율은 95.6%이지만 고등학교 무상급식은 14.3%에 불과하다”며 “무상급식을 확대해 이윤이 아닌 급식 공공성을 향상시키지 않는 이상 메뉴 다양성은 확보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외국에선 정부 또는 지역 차원에서 끼니마다 채식 메뉴를 제공해 학생들의 메뉴 선택권을 보장해주고 있다. 프랑스 농림부는 2011년도부터 새로운 학교 급식 규정을 도입해 급식 메뉴의 반을 채식으로 구성하게 했다. 미국은 2012년 제정한 ‘건강하고 굶주림 없는 아이들을 위한 법안’(Healthy Hunger-Free Kids Act)에 따라, 학교 급식을 관할하는 농무국이 육류를 두부, 콩과 같은 대체식품으로 바꾸는 새로운 급식 기준을 마련했다. 미국 코네티컷주의 뉴헤이븐(New Haven) 등 일부 지역에선 채식 식단을 포함해 2가지 이상의 메뉴를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채식주의 청소년 문제가 단순히 교내 소수자만의 특수한 문제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서울 영등포구 B고등학교 조영선 교사는 “학생들의 의견이 급식에 반영 안 된다는 점이 매해 급식 불만족 이유로 손꼽혀 왔다”며 “자신이 먹는 음식을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현 상황을 소수자 인권이 아닌 전체 학생의 보편적 인권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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