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전 11시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벌터경로당. 한편에 마련된 자그마한 인형극무대의 막이 열리니, 머리 희끗희끗 한 배우들이 사람 모형의 자그마한 헝겊 인형을 손에 들고 등장했다.
50㎡ 남짓한 공간에서 비슷한 또래 노인 40여 명을 첫 관객으로 맞이한 이들은 미리 녹음한 자신의 목소리에 맞춰 직접 만든 인형들을 분주히 움직였다. 극의 제목은 ‘인형의 집’. 20분의 짧은 극이었지만, 배우들에겐 6개월간 맹연습 끝에 펼친 설렌 데뷔 공연이었다.
이날 인형극을 선보인 극단은 사단법인 경기인형극진흥회가 수원문화재단 ‘우리동네 예술프로젝트’ 사업의 하나로 지난해 창단한 ‘인생나눔 인형극단’이다. 평균 연령 78세 신인배우 9명으로 구성됐다. 경기인형극진흥회는 문화소외지역인 구도심 노인들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 인형극단을 운영하기로 하고 단원을 모집했다. 수원문화재단이 연간 1,00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했고 창단 취지에 공감한 김은정 계명문화대 유아교육과 교수 등 전문가 3명이 재능기부에 나섰다.
배우들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극에 필요한 인형을 제작하는 과정부터 대본, 목소리 녹음까지 전 과정에 참여했다. 인형 얼굴에 눈과 코, 입을 그려 넣은 것은 물론 원단을 떼 옷을 입혔고 팔과 머리를 움직일 수 있도록 막대기도 직접 매달았다.
스토리 역시 80여 년 배우들의 굴곡진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문 작가가 배우들과 인터뷰,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 다듬었다. 주인공 ‘승국 어르신’이 어린이 ‘버들이’와 ‘가늘이’에 이끌려 노인정으로 가는 길에 인형극 공연을 준비 중인 단원들과 만나 신입 단원이 된다는 게 줄거리다. 평소 ‘승국 어르신’과 관계가 소원했던 딸 ‘주희’는 인형극에 열정을 쏟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그를 응원하게 되고 아버지와의 극적으로 화해하게 된다.
배우이자 스토리의 뼈대를 제공한 박승국(72) 씨는 인형극 내용처럼, 일주일에 두 번(월ㆍ금요일) 연습 날만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극단 활동에 푹 빠져있다. 그는 7년여 전 부인과 사별하고 장안구 조원동의 한 원룸에서 혼자 살다 천주교 신부와 연이 닿아 극단에 참가하게 됐다. 박씨는 “좁은 방 안 텔레비전이 유일한 대화 상대였는데, 인형극을 시작하면서 취미를 함께 하는 벗들이 생겨 무척 좋다”며 “하루하루가 기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극에 ‘주희’는 실제 내 딸”이라며 “10여 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녀로 출가한 딸을 인형극을 통해 매일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인형극단 창단을 주도한 김강식(44) 경기인형극진흥회 상임이사는 8일 “손바닥만 한 조그만 인형이 노인들에게는 삶의 활기를, 어린이에게는 삶의 슬기와 지혜를, 성인에게는 추억과 공감을 불어 넣고 있다”고 웃었다.
인생나눔 극단의 인형극은 다음 달 수원지역 초등학교에서 그 두 번째 막이 오를 예정이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