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제정신을 갖고 살 수 없다. 이 정권은 끝내 “이래도 미치지 않을래?” 하며 국민을 시험한다. 모두 잊고 고전이나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책을 펼쳤다. ‘삼국지’의 한 대목. 영제 사후 대장군 하진은 십상시를 제거하려 한다. 장수를 모으고 국경을 지키는 군대까지 부르려 하자 조조가 말한다.
“이 일은 모두 황상께서 내시들을 총애하시는 바람에 일어난 것입니다. 원흉 하나만 제거하면 되는 데 이는 옥사장 한 명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굳이 변경의 장수까지 도성으로 불러들일 일이 있겠습니까.”
원흉 하나만 제거하면 된다. 문제는 옥사장이다. 제대로 된 옥사장이 없다. 내시에게 굽신거리는 등신만 있다. 내시는 팔짱 끼고 실실 쪼개고, 쓰레기들은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인사를 한다. 이게 검찰이냐? 삼국지를 집어 던졌다. 이럴 때는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정답이다. ‘도덕경’을 넘겼다. 53장에 이런 말이 있다.
“조정은 화려하나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곳간이 텅 비었습니다.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비단옷 걸쳐 입고 음식에 물릴 지경이 되고, 재산은 쓰고도 남으니, 이것이 도둑 아니고 무엇입니까.”(오강남)
노자가 2016년의 대한민국을 예언하셨나. 화려한 조정, 쓰고도 남는 재산을 가진 재벌들, 백성은 굶주리는 데 제 이권만 챙기는 데 골몰했던 정치인들. 이들이 도둑 아니고 무엇이랴.
이게 정부냐? 이럴 때는 마음을 착하게 먹고 안정을 취하는 게 좋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를 집어 들었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다음이고 군주는 하찮다. 만약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제후를 바꾸면 된다.” (진심 하편)
명쾌하다. 왕이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왕을 바꾸면 된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당장 퇴진하라. 새로운 왕을 뽑아라. 더는 기다릴 수 없고 기다려서도 안 된다. 사직의 대사는 한날한시라도 멈추어선 안 된다. 완전한 나라는 바라지도 않는다. 완벽한 지도자는 있지도 않다. 그저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리더를 원하는 것뿐이다. 우리의 바람은 이토록 소박하다. 공자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나.
“대도가 행해지는 세계에서는 천하가 공평무사하다. 어진 자를 등용하고 재주있는 자가 정치에 참여한다. 간사한 모의가 끊어지고 도둑이나 폭력배가 생기지 않는다. 문을 열어놓고 닫지 않으니 이를 대동(大同)이라 한다.” (예기 운기)
공평무사. 제발 공평까지는 못 가더라도 무사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요즘에는 아침에 신문보기가 겁난다. 저녁에 뉴스 틀기도 괴롭다. 또 어떤 기괴한 일이 일어나서 우릴 놀라게 할지, 어떤 막장 드라마가 펼쳐져 기가 막히게 할지 몰라서다. 매일 스트레스 받다 보니 허해지고 화낼 기운도 고갈됐다. 몇 년 전 나는 부친상을 당했는데 마치 그때가 재현되는 듯하다. 울다가 막 분노하다가 허탈해하며 주저앉다가 멍한 채 허공을 바라본다. 패닉이다.
‘한비자’를 꺼내 들었다. 군주를 현혹하는 여덟 가지 요인을 팔간(八姦)이라 한다. 첫째는 동상(同床), 같은 침대를 쓰는 사람들(순실은 청와대에서 잠도 잤다). 둘째는 재방(在旁ㆍ곁에 있음). 배우와 난장이 등 군주를 즐겁게 해 주는 사람이다. 요즘 말로 엔터테이너다(은택과 순실은 문화예술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다). 그 다음은 군주의 친인척(승마 선수?), 과도한 건설(평창 올림픽), 신하가 군주의 위세를 업고 공포 정치를 펼치는 것, 공적인 재물 낭비, 언로의 불통 등이다. 마치 현재의 대한민국을 빗대는 듯하다. 이래서 고전은 현실이다. 고전을 제대로 읽으면 현실이 바로 보인다.
공자는 매사 우유부단한 염유에게 “옳은 일을 들으면 곧바로 행하라(문사행지 聞斯行之)”고 했다. 필자는 매사 우유부단했으므로 이제 ‘문사행지’할 차례다. 이번 주말에는 책을 집어 던지고 광화문으로 가야겠다.
명로진 인디라이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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