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등장한 ‘개성파 배우’라 더 반갑다. 수수한 외모지만 훤칠한 키에 표정이 풍부해 단숨에 눈길을 붙든다. 지난달 25일 종방한 tvN 드라마 ‘혼술남녀’에 그가 없었다면 노량진 학원가 사람들의 이야기가 김 빠진 맥주처럼 조금 밍밍했을 것 같다. 맛깔스러운 연기로 행정학 강사 민 교수를 그려낸 신인배우 민진웅(30)이 최근 한국일보를 찾았다.
민진웅은 드라마를 마치며 “첫 경험의 순간들”을 돌아봤다. 뿌듯함과 아쉬움과 애틋함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는 “드라마에서 큰 배역을 맡은 게 처음이라 연기 디테일부터 마음가짐과 체력관리까지 새롭게 배운 게 많다”며 “동료들의 조언과 격려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곁을 든든히 지켜준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전우애를 느낀다”고도 했다.
민 교수는 날마다 새로운 성대모사로 수강생과 동료 강사들을 즐겁게(때론 썰렁하게) 해준 재간둥이였다. 실제로 개인기를 활용해 재미있게 강의를 하는 노량진 강사들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다. 영화 ‘내부자들’의 이병헌부터 배우 이선균, 이순재, 요리연구가 이혜정, 교양프로그램 ‘VJ특공대’의 성우 등 총 19명의 성대모사를 했다. 현장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영화 ‘해바라기’의 김래원 대사인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였단다.
그렇다고 민 교수가 마냥 웃기기만 한 건 아니다. 남몰래 어머니 간병을 해온 사연이 그려져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들기도 했다. “한 끗 차이로 비호감이 될 수 있는 캐릭터라 처음엔 성대모사 표현 수위가 고민이었어요. 어머니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면서 저도 민 교수의 감춰진 진짜 모습을 알게 됐죠. 연민이 가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더 진심을 쏟았던 것 같아요.”
드라마 막바지에 민 교수는 늘 투닥거리던 동료 황 교수(황우슬혜)와 하룻밤 사고를 친다. 순식간에 불붙은 두 사람의 로맨스가 부담스럽지 않았던 건 미리 깔아놓은 ‘밑밥’ 덕분이다. 민진웅은 “대본상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사랑할 만한 여자’라는 생각을 갖고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왔다”고 했다. 약간 푼수 같지만 정 많은 황 교수의 성대모사를 해봤냐고 물으니 “황 교수는 (스타 강사 진정석을 연기한)하석진 선배가 정말 잘 따라 한다”며 개구지게 웃었다.
‘혼술남녀’로 이름을 알리기 이전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연극 무대에서 실력을 다졌다. 연극에 푹 빠져서 다른 장르엔 눈길 주지 않았다. 그는 “영화와 드라마는 아무나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왔다. 현 소속사 관계자가 우연히 그의 연극을 보고선 전속계약을 제안해 왔다. “연극을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때였어요. 6개 작품 출연이 예정돼 있었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연극 무대에 서고 싶어요.”
영화 ‘패션왕’(2014)과 ‘성난 변호사’(2015) ‘검은 사제들’(2015)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2016), 드라마 ‘용팔이’(2015) 등에 작은 역할로 출연했다. 그러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2016)에서 시인 윤동주(강하늘)와 독립운동가 송몽규(박정민)의 연희전문학교 동기 강처중을 연기하며 주목 받았다. ‘동주’의 흑백 스크린에서도 그의 능청 연기는 눈길을 끈다. 당초 ‘동주’ 시나리오는 표준어 대사였는데 민진웅이 북간도 사투리로 오디션을 본 뒤로 윤동주와 송몽규의 대사까지 사투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혼술남녀’ 캐스팅에도 ‘동주’가 영향을 미쳤다. 공시생 동영(김동영) 역할로 오디션을 봤는데, 연출자가 ‘동주’를 잘봤다면서 즉석에서 민 교수 대본을 주더란다. “이상하게 웃긴다”는 이유로 민 교수 역에 낙점됐다.
민진웅은 “아직 부족함이 많다”고 겸손해하며 “열심히 오디션 보고 좋은 작품 만나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고 했다. “지금도 공시생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그에게서 숨겨둔 고민이 엿보여 넌지시 물었다. “너무 많이 걱정하고 준비하다 보니 오히려 현장에선 조금 경직되는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잘하는 일이 현장과 연기를 즐기고 눈앞의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었는데 말이죠. 어떻게 해야 제 장점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앞으로 차근차근 복기해보려 합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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