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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내가 이러려고 인간이랑 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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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내가 이러려고 인간이랑 살았나

입력
2016.11.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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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시각, 후각, 청각 등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인간의 마음을 알아챈다. 게티이미지뱅크
개는 시각, 후각, 청각 등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인간의 마음을 알아챈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절이 하수상해서 그런지 개를 찾는 사람이 많다. 난세에 격한 말들이 난무하고 그 가운데 개가 줄기차게 소환된다. 국민이 개, 돼지라느니, 권력의 개라느니. 이런 비유 속에서 개는 무지하거나 뭐라도 주면 덥석 받아먹고 꼬리를 흔드는 상징이 된다. 그럴 때마다 ‘끙!’하며 참는다. 개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이런 표현을 쓰나. 차라리 ‘개어이없음’, ‘개실망’처럼 접두사로 쓰이는 게 낫다. 이건 그래도 ‘최상’이라는 뜻이니까.

일반인만 그런 건 아니다. 개와 사는 지인들 중에도 안타깝게도 개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 있다. 물론 나도 개에 대해서 많이 모르고, 많은 전문가가 ‘개는 이런 동물’이라고 추정하지만 합당한 일반화인지 의견은 분분하다. 그런데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명확한 것 하나는 인간과 함께 살아주는 것에만 머물기에 개는 너무 똑똑하다는 것이다.

불통의 시대이다. 소통을 하겠다고 ‘아, 몰라. 일단 내 말부터 들어봐.’는 소통의 자세가 아니다. 소통은 상대의 말을 먼저 듣는 것이 시작이다. 그런데 남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 개만큼 뛰어난 존재가 없다. 개는 인간의 행동을 읽는데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고 얼굴 표정만으로도 감정을 읽어낸다. 그야말로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인간의 마음을 알아채고 위무한다. 그러니 의사소통의 달인인 개들을 불미스러운 일에 소환하는 건 그들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개에 관해서는 동물학, 인류학, 생물학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책을 썼는데 그 중 동물행동학·비교인지학·심리학 교수인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개의 사생활’은 유용한 책 중의 하나이다. 개의 무리, 서열, 감정에 대한 의견이 기존의 이론과 조금씩 다른데 특히 우리가 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다 잊고 회의적 사고를 통해 다시 알아보자는 제안과 개의 능력은 인간의 특별한 관심을 받을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개의 사생활’의 저자 호로비츠 박사가 반려견을 쳐다보고 웃고 있다. 빅토리아 스틸웰 아카데미
‘개의 사생활’의 저자 호로비츠 박사가 반려견을 쳐다보고 웃고 있다. 빅토리아 스틸웰 아카데미

개 버릇은 어릴 때 들어야 한다며 새끼에게 폭력에 가까운 훈련을 시키거나 개는 먹이고 사랑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부를 통해 개의 실체를 알게 된다면 그 경이로움에 탄복하게 될 텐데, 더 행복하게 함께 살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 그저 훈련과 애정의 대상으로만 자신들을 한정 짓는 사람들을 보며 개는 생각할지 모른다. 내가 이러려고 수만 년 전에 인간이랑 살기 시작했나.

종종 늑대와 개를 비교 연구한 해외 사례가 소개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영리하냐는 것보다 개는 늑대에게 없는 인간과의 관계 맺기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개는 문제에 부딪치면 정보, 도움, 허락을 구하기 위해서 인간의 얼굴을 관찰한다. 인간들 사이의 핵심적인 의사소통 수단인 시선 교환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처럼 상대의 반응을 예민하게 관찰한다면 불통이 있을 수 있을까.

개는 자기의 역할에 굉장히 충실한 존재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개는 자기의 역할에 굉장히 충실한 존재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저자는 무리 개념을 의인화의 반대인 의수(獸)화라고 반대하면서 인간과 개는 무리라기보다 온화한 동반자라고 표현한다. 물론 나도 지극히 인간적인 수직적 서열, 우두머리 개념에는 반대하지만 동반자로서 각자의 역할을 다 하는 무리의 개념에는 찬성한다. 사람과 개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개는 자기의 역할에 굉장히 충실한 존재이다. 냄새 맡고, 놀고, 산책하며 행복한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인간을 관찰하고, 인간에 대해 생각하면서 사랑과 행복을 나눈다. 우리는 자신의 역할에 이처럼 충실한 적이 있는지. 개의 무리는 이렇듯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각자가 모여서 평화롭게 유지된다.

최근 이게 나라인가 허탈감에 빠진 나를 감동시킨 사람들이 있다. 유기동물 보호소에 함께 가기로 한 독자는 봉사 가는 날이 소풍 가는 것처럼 기다려진다 하고, 버킷리스트에 ‘캣맘되기’가 있다는 독자. 며칠 전에는 커다란 박스가 뉴욕 독자에게서 배달되어 왔는데 박스에는 한국의 보호소 아이들에게 입히라고 직접 지은 겨울옷이 40벌이나 들어있었다. 부당한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세상을 꽉 채운 요즘, 개의 무리를 떠올린다. 우두머리든 누구든 구성원에 문제가 생겨도 묵묵히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무리를 존속시키는 개의 무리를.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개의 사생활,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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