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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 사전] 개쩐다

입력
2016.11.0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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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 ‘굉장하다’ 등의 뜻으로 젊은 사람들이 감탄할 때 쓰는 말이며 ‘개쩔다’의 현재형이다. 긍정적인 쪽이나 부정적인 쪽 모두에서 쓰이는데, 좀 더 구어적인 활용형으로는 ‘개쩌네’가 있다. 동사 어근인 ‘쩔다’는 ‘절어 있다’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접두사 ‘개’는 뒤에 오는 말의 의미를 그저 강조한다. 다른 사례로는 ‘개이득’ ‘개꿀잼(꿀같은 재미)’ 등을 들 수 있다. 과거에 접두사 ‘개’는 ‘개떡’ ‘개살구’에서처럼 ‘비슷하지만 질이 떨어지는’의 뜻이거나 ‘개꿈’ ‘개죽음’에서처럼 ‘헛되거나 쓸데없는’의 뜻이거나 ‘개망나니’ 등에서처럼 ‘부정적으로 정도가 심한’의 뜻이었다.

나는 ‘개쩌네’야말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그로 인한 한국의 국가 시스템 붕괴 상황을 한마디로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라고 여긴다. 아버지-무당에 이어 딸-무당에게 대통령이 놀아난 것은 개쩐다. 청와대의 비서들과 정부의 장ㆍ차관들이 비선 실세인 무당에게 굽신거리면서 국가 기밀과 정부 예산을 예사로 갖다 바친 것도 개쩐다. ‘떡검’들이 여전히 우병우를 황제로 대우하는 것도 개쩐다. 새누리당의 친박들이 버티고 있는 것도 개쩐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이 5%나 된다는 것도 개쩐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현재의 이러한 국가 시스템 붕괴 상황에 대해서, 그 원인이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있다고 간주해버리고 마는 것도 역시 개쩌는 일이다. 개쩌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우리 국민 자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지난 번 대선 때 종교적 광신 상태에서 박근혜에게 묻지마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우선,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반성한다. 나는 지난번 대선에서 투표를 포기했다. 어차피 박근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데다가, 더 나아가서 ‘박정희 환상’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박근혜의 집권과 실정을 거치는 게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개쩌는 판단이었다. 지금 그 대가가 개-개-개-개쩐다.

각설하고, 이번 국가 시스템 붕괴 상황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지는 논쟁이 될만하다. 일부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라고 하는데 한국어 위키피디아의 항목 이름도 그러하다. 영어 위키피디아의 항목 이름은 ‘2016년 남한 정치 스캔들’이라고 되어 있고, 괄호 안에 ‘일명 최순실 게이트’라고 하고 있다.

‘게이트’라는 것은 1970년대 미국 공화당 닉슨 대통령의 정치 스캔들에서 생겨난 말인데, 도청이 시도되었던 민주당 선거본부가 있던 건물 이름이 ‘워터게이트’였다. 이후로 정계, 언론계, 문화계 등의 많은 추문에 대해서 ‘-게이트’란 접미사를 붙여 쓰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최순실 게이트’라고 띄어 쓰는 것은 약간 엉터리 어법이라는 느낌도 든다.

‘비선 실세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라든가 ‘최순실 비선실세 국정개입 파문’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것은 일단 너무 길다. 또한, 며칠 전 대구의 한 여고생이 제대로 밝혔듯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박근혜라는 점에서 상당히 미흡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저 ‘박근혜 게이트’로 하자고 주장한다. 위에서 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 했다. 아무튼, 이번 스캔들은 그 실체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름을 정하는 것까지도 개쩐다고 할 수 있다.

‘스캔들’이란 말은 ‘적을 노리고 놓아둔 덫’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단어에서 생겨나서, 16세기 종반 영어권에서는 ‘수치스러운 행위나 사건’이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스캔들’은 대개 ‘추문(醜聞)’이라고 번역된다. 추잡하거나 추악한 소문이란 뜻이다.

한자 ‘들을 문(聞)’은 갑골문에서 사람이 귀를 받들고 있는 형태의 상형문자였는데 전서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전승된 형태로 바뀌었다. 회의문자로서 ‘문(聞)’은 ‘문(門)’에서 ‘바깥 소리를 귀(耳)로 듣는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박근혜는 지금이라도 하루 빨리 국민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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